[공포소설][펌] 씨앗공포증 (단편)

장르선택 (전체)

선호 장르

  • 전체.
  • 로맨스
  • BL

선호 소재

  • 전체
  • 현대
  • 전문직
  • 스포츠
  • 판타지
  • 무협
  • 동양풍
  • 서양풍
  • 회귀
  • 빙의
  • 환생
  • OOO버스
  • 게임
  • 학원
  • SF
  • GL

전체

1
  1. 1
  2. 2
  3. 3
  4. 4
  5. 5

신작 안내

[공포소설][펌] 씨앗공포증 (단편)

8 갱킹 0 3,015 2020.04.16 15:42



1.

아직 찬바람이 섞여있는 4월의 봄,

겨울잠 끝에 깨어난 자연은 어느새 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멋진 경치 속에 시원하게 뻗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내 차는 지금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

" 아빠 있지, 저번에 내가 말한 아싸 있잖아! 이번에 조별과제 하는데 또 연락 불통인거 있지? 완전 짜증나. "
" 누구? 성격 좀 삐리하다던 그 친구 말이가? "
" 친구는 무슨 친구야? 그냥 아싸라니까. "
" 아싸가 뭐고? "
" 아웃사이더 줄임말. "
" 은따? "
" 엉. 그거랑 비슷하네. "

학교, 대학, 군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간세상 속 언제나 '은따'는 존재했다.
왕따, 고문관, 일못, 어떤 식으로 불려지든 꼭 한 명씩은 있다.

딱히 잘못한 게 없더라도 은따가 될 수 있다.
은따로 낙인 찍힌 순간 생존은 그 자체로 잘못이 된다.
약점은 약점대로 물어뜯고, 약점이 없으면 약점을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그 악습이 잘못인 줄 알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도 그 고리를 끊어야 하겠지.
그러나 그런 영웅은 없다.

있어도 내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은따를 한 명 만들어 놓고나면 나머지 구성원들의 결속력은 강해지곤 한다.

엿같은 일이지. 그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

" 듣고 있어? 우씨, 걔가 그렇다니깐. 완전 하는 일마다 밉상이야. 그러니까 맨날 밥도 혼자 먹지. "
" 에이- 누가 뭘 어째 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사람을 외롭게 하면 쓰나? 니라도 좀 잘 대해줘라. "
" 뭘 잘 해줘, 나만 이상한 사람 될 건데. 그리고 걔가 그렇게 미움 받을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잖아. "
" 그 얘기는 고마하자, 아무튼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대주면서 서울에서 대학 다니게 해줬으면 남 일에
너무 열올리지말고 니 하는 공부만 열심히 하그라. 최소한 니가 나서서 괴롭히지는 말고. 알겠제? "
" 그거야 당연하지, 나도 앞에선 아무 소리도 안 해. 내 코가 석자인데 뭘. "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차 안에는 바퀴소리만 맴돌고, 핸드폰으로 뭘 보는지 깔깔 웃어대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창 밖의 고향 가는 경치에 겹치자 잊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던 옛 기억이 다시금 뇌리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2.

...

무찌르자 공산당-!

몇천만이냐 삼천만-!

대한넘어 가는 길 저기로구나-!

" 어? 누가 고무줄 짤랐노? "
" 으헤헤, 나지롱- 약오르제? "
" 야! 니 진짜 선생님한테 다 말할끼다! "
" 말해봐라매, 말해봐라! 우르르 약오르제! "
" 저 새끼를 진짜! "

여자아이들이 뛰놀던 고무줄을 끊어놓고 도망가는 땅꼬마,
처음 저지른 일이 아니었기에 참다 못한 한 아이가 쫓아가려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이 되려 말렸다.
그리곤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멀찍이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낄낄거리던 우리를 향해 힘껏 소리 질렀다.

" 유대준 전민재 박상우! 다 느그가 시킸제? 나쁜 놈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머스마가? 꼬추 떼라! "
" 닥치라! 우리가 안 시킸그든! 가스나들아! "

일은 땅꼬마가 저질렀지만 사주한 쪽은 우리 3인방이라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멀리 한 바퀴를 돌고 돌아 땅꼬마는 우리 앞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형석이, 우리가 갖고 놀다시피 하는 녀석의 이름이다.

" 헥헥, 대준이, 내 잘 했제. 성공이제. "
" 마, 장난하나? 아이스께끼는 왜 안 하는데. "
" 아 맞다.. 아이스께끼.. 미안. "

대준이는 우리 3인방의 우두머리로, 동네에서도 골목대장을 하며 넘긴 달력이 몇 장씩이나 되는 녀석이었다.
키도 덩치도 중학생 수준이라 웬만한 남자애들은 대준이 앞에선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못 하기 일쑤였다.
민재는 눈치가 빠르고 영악한 면이 있어서 부족한 덩치를 대준이 옆에 붙어다니는 걸로 만회하는 놈이었고,
나는 대준이와 어릴 적부터 친했던 터라 남자들끼리의 서열 경쟁에서 운좋게 빠져나와있는 놈이었다.
같은 학교면서 한 동네에 사는 우리였으니 매일 어울려노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문제는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여름엔 멱 감고 겨울엔 썰매를 끌며 온갖 놀이를 하고 또 하다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재미가 뚝 떨어졌다.
그러다 재미를 들인 것이 바로 형석이 괴롭히기,

일명 '마루타 놀이'였다.

" 가만히 있어라, 움직이면 두 대다. 알았나. "
" 미안, 진짜 미안, 함만 봐주라.. "
"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러다 눈 맞는다. "

여름이면 땟국물이 줄줄 흘렀고, 겨울엔 무릎과 팔꿈치 밑이 하얗게 피어올라있던 형석이.
머리엔 커다란 땜빵이 있고 사이사이 이가 살고있던, 길에 떨어진 사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워빨던,
모두 어렵고 배 굶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이 혀를 끌끌 차는 살림살이 아래에서 자라던 형석이.

" 민재! 상우! 임마 잡아봐봐. "
" 대준이- 아이스께끼 잘 할게, 미안, 미안- "

딱,딱,따악-
아파서 고개를 이리 돌려도 한 방, 저리 돌려도 한 방, 한 방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어른이 맞아도 아플 딱밤이 몇 번씩이나 날아들었다. 기어코 눈물이 터졌다. 빨리 운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는 울 때까지 때릴 셈이었다.

" 으허억- 끄윽. 끄윽. "
" 마. 어른들한테 고자질 하면 뒤진다. 알았나. 쳐울지마라. 머스마가 그것도 못 참나? "

울리려고 때려놓고 울면 그치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게 떳떳하지 못 한 일인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단지 선생이나 어른들에게 들키면 혼나기 때문에 몰래 갖고 놀아야하는 긴장감 있는 놀이일뿐.

형석이는 울며 온몸을 들썩였지만 양옆에서 단단히 붙잡고 있었기에 우리로부터 벗어나지 못 했고,
몇 번을 더 꿈틀대다 대준이에게 멱살을 잡히고서야 힘이 빠진듯 늘어졌다.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소리는 속으로 삼켰다.

이 이상 대준이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딱밤이 아니라 주먹이 날아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3.
시간이 제법 흘러 어느덧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곧 해가 자취를 감추면 마을 곳곳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겠지만 형석이네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진작에 집을 나가시고,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형석이 단둘이 사는 형석이네.
그나마 마을 토박이로 자라며 이 집 저 집에 쌓아온 공덕이 있어 아예 외면받지는 않았기에 마을 사람들이
곡식철이면 곡식에, 김치 담근 날엔 김치, 아버지와 아들내미가 굶어죽진 않을만큼 슬그머니 밀어넣어줬고,
그렇기에 담장 너머로 형석이네 집을 훔쳐보면 김치며, 나물을 척척 올린 밥숟가락을 입이 미어터져라
쑤셔넣곤 쩝쩝대는 형석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눈칫밥 먹어가며 학교 다니는 마당에 밥 짓는 연기 하나 피어오르지 않는 집에서,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17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