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길어지는 손가락의 왈츠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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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펌] 길어지는 손가락의 왈츠 (단편)

8 갱킹 0 3,144 2020.04.16 15:44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찻잔 속엔 진귀한 약초로 끓였다는 차가 가득 담겨있었다.
따뜻한 연기와 함께 좋은 향이 풍겨나왔지만 좀처럼 마실 수 없었다.

" 부디 저희 딸을 살려주십시오, 선생님. 저희 딸은 피아니스트란 말입니다. "

환자의 부모 앞에 선 의사 입장인 내게 한가로이 차를 홀짝거릴 여유는 없었으니까.

" 이해합니다. "

" 그런 모습이 사교계에 알려졌다간 아이의 미래는 끝이에요, 불쌍한 것. "

" 평판이 사람을 살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 반대로 쓰이죠. 최선을 다해볼테니 너무 염려마세요. "

그들을 안심 시키기 위해 다독였지만 사실 보호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긴 어려웠다.
손가락이 길어지는 병이라고 했다.
거인증으로 인한 이상 성장이나 기형으로 태어나 손가락이 더 달린 경우는 수없이 다뤄봤지만
이상 없이 태어나고 자라온 여자의 손가락이 점점 길어진다니...?

" 루디, 선생님 오셨다. 들어가도 되겠니? 들어가마. 이해해다오. "

" ... "

대답 대신 방 안에선 피아노 연주가 낮게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연주가 맑게 퍼졌다.

" 루디. 선생님께 인사하렴. "

" 안녕하세요. "

" 루디. 눈을 보고 인사해야지. 예를 갖추렴. "

타이르는 루디의 부모를 만류한 나는 그녀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 반갑구나. 루디. 나는 의사고, 오슨이라고 한다. "

" 오슨 선생님. 안녕하세요. "

" 피아노 연주가 아주 훌륭하구나. 네 재능에 대해선 들어왔지만 직접 들으니 더욱 영광이야. "

그녀의 연주를 칭찬하는 동시에 내 눈은 의사로서 환자의 손가락을 살폈다.
길쭉한 손가락, 마디에서 마디 사이가 한 뼘은 될만큼 길다.

" 계속 연주를 듣고 싶구나, 그래도 될까? "

" 연주는 끝났지만... 청중이 원한다면요. "

피아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의자, 그 위에 앉은 슬픈 표정의 그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더욱 연주에 몰두하는 듯 했다.

" 선생님은 너를 낫게 해주려고 온거야. "

" 정말요. "

" 물론. "

" 수술이 필요한가요. "

" 필요하다면. 하지만 아프게 하지 않으마. "

" 네. 하지만. "

" 음? 말해보렴. "

" 벌써 의사 선생님도 세 분째 뵙는걸요. "

" 세 분? "

듣지 못 한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 그녀의 아버지를 쳐다보자 그는 시계 보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 처음엔 남들보다 손가락이 조금 길다는 걸 알아챈 직후였어요. 그 선생님의 성함은 마이튼이셨죠. "

마이튼? 알아. 들어본 적 있다.
왕립대학에서 알아주는 수술 실력을 가진 그가 시도조차 하지 못 했단 말인가.

" 두번째는 렌디 선생님. 그때는 손가락이 남들보다 두 배 정도 길어졌을 때였어요. "

' 수술 능력으론 문제 없는 사람들이다, 절단 수술을 하지 않은 건 그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란 말인가.
장래가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소녀의 손가락... 더 길어져도 목숨엔 지장이 없으니 더욱 부담으로 다가왔겠지. '

" 그리고 내가 세번째구나. 그동안 우리 의사들이 널 기다리다 지치게 했구나. 대신 사과하마. "

" 선생님. 제 손가락이 징그러워요? "

" 전혀. "

" 하지만 보세요. 전 징그럽다구요. "

루디가 피아노 치는 걸 멈춘 채 들어보인 손가락은 루디의 이마를 넘어 한참이나 위로 솟아있었다.

" 점점 길어져요. 내일이면 더 길어지겠죠. "

" 선생님이 연구해보마. 피아노를 치기 좋은 손가락을 돌려주마. "

" 불가능해요. 렌디 선생님이 말하는 걸 엿들었어요. 이 시대 의학으론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

" 그는 실력 있는 의사야, 잘못 들은 걸게다. "

" 아버지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린다고 했지만 그 문제가 아니라고 했어요! 이래도 잘못 들은 건가요? "

" 루디! 그래서 오슨 선생님을 모셔온거다!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없다! "

루디의 말에 불쑥 튀어나온 건 그녀의 아버지였다.

" 아버님, 괜찮습니다. 루디의 속마음을 알아야 진료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치료는 의사와 환자가 함께 공감해야해요. "

" 선생님, 제 손가락이 나을 수 있어요? 처음 선생님도, 두번째 선생님도 그렇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지금 제 믿음은 반에서 또 다시 반으로 줄어들었어요, 점점 흔들려요, 절 붙잡아주세요. 부탁이에요. "

"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

"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요. 매일 아침 조금씩 피아노로부터 멀어지는 제 기분을 아시겠어요? "

" 내일부터 치료를 시작하자. 우선 오늘 손가락의 길이를 재어둬야겠구나. "

" ...알겠어요. "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르고, 꿰매는 일이라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순식간에 해낼 수 있었겠지만
자라나는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너무나 어려운 숙제였다.



비슷한 사례나 성장에 관여하는 약물 치료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자 각지의 의술인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단 한 건이라도 회신이 오길 고대하며 마차에 올랐다. 마부는 루디 저택을 향해 말을 부리기 시작했다.

간밤에 비바람이 불더니 길 위엔 온통 자갈이 깔려있었다.
그 탓에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도리어 내 눈꺼풀은 감기고 있었다.
밤새 책을 펼쳐봤지만 답에 근접하긴 커녕 이렇다 할 진단조차 내리지 못했다.
결국 눈 앞이 깜깜해졌고, 마부가 날 흔들어 깨웠을 땐 루디 저택의 앞에 도착해있었다.

종을 울리기도 전에 말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문이 열리며 주인 부부가 나를 맞이했다.
다과를 준비해놓았다며 날 응접실로 초대했지만 정중히 사양한 다음 곧장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 시녀장인가요, 아침 생각없어요. 내일도 마찬가지니까 미리 말해놓을게요. "

" 루디, 선생님이다. "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17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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