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검은악마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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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펌] 검은악마 (단편)

8 갱킹 0 3,289 2020.04.21 17:10



아무래도 라면을 끓일때 물을 너무 많이 넣은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옅은 국물의 색은 물과 스프의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걸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미 퉁퉁 불어버린 면을 입안에 집어넣자, 얼굴이 찡그러질 정도로 맛이 없었다.


더 이상 먹기는 그른듯해, 아직 절반도 채 먹지 않은 라면냄비를 그대로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음식을 남기면 안됀다는 말 정도는 잘 알고있었다.
지구 저편에는 이 불어터진 라면도 못 먹어서 굶어죽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 또한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었고, 나는 나였다.
내가 그들처럼 살순 없지 않은가 ?


이제 이런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 방의 곳곳에는 찢어지거나 엉망이 되어버린 도화지들이 넘쳐났다.
이것들이 모두 단 하나의 수작을 위해 희생된 도화지들의 양이었다.
저 도화지들의 희생으로 그린 그림은 성공적이었다.


미술작품 공모전에 출판해 당당히 1위를 차지했으며, 내가 그린 다른 작품들 조차 모두 높은
점수를 받으며 상위권에 머물렀다.
이미 알고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강력한 신인화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며
얼마안가 나만의 전시회가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잘 알고있었다.
이 좁고 냄새나는 단칸방과, 맛없고 불어터진 라면과 이별한다는 소리였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가.


한달동안 밀가루 이외의 음식을 먹어본적없었던 날도 있었고, 밀린 집세를 받으려는
주인 할머니와 대판 싸운적 또한 있었고, 내가 자고있던 중 엄청나게 커다란 귀뚜라미가
내 입속으로 들어갈뻔한 적도 있었다.


이런 지옥과도 같은 생활과 안녕이라니.
너무도 행복했다. 모든게 꿈만같았고, 내 얼굴에선 미소가 떨어지는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의 아침 역시 나는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피우며 눈을 떴었다.











"어, 나야 잘 지내지. 야 놀랄 준비해라 나 조만간 전시회 열릴지도 몰라 임마."


그건 분명 내 이름으로 열리는 전시회는 아니었다.
내 그림은 다른 화가가 연 전시회의 귀퉁이에 걸리는 그림에 불과했지만
나에겐 그것조차도 너무나 기쁜 행운이었다.
나에게 그럴날이 올줄 누가 알았겠는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네온사인들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황홀했다.
거리의 모든 네온사인들은 앞으로 일주일 후 열릴 내 전시회를 축하해주는것 같았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온화한 얼굴도 좋았고, 부드럽게 밟히는 택시의 엑셀 소리도 좋았다.


"청년 기분 좋아보이네. 무슨 일이라도 있어 ?"


기사 아저씨가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아마 내가 친구와 전화하는 내용을 들은것같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무슨 상관이냐며 화를 냈음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예, 아저씨 저 곧 제가 그린 작품이 전시회에 올라갈거 같거든요."


"어이쿠, 좋겠네. 젊은 친구가 그림을 잘 그리나봐 ?"


"헤헤, 아직 그 정도는 아니구요."


"하..젊은 친구가 대단하구만..나도 자네 또래의 아들놈이 하나있는데.
녀석이 좀 지독한 병을 앓고 있거든..얼른 일어나서 자네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만."


갑자기 숙연해지는 분위기가 미안했는지 아저씨는 나에게 사진 한장을 건넸다.
'이게 우리 아들.' 이라며 건네는 그 사진 안에는 잠들어 있는 남자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아저씨가 말한 병 때문인지는 몰라도 얼굴이 상당히 초췌해져있었다.


"와, 아저씨 아들 잘생겼네요."


내 말에 기사아저씨는 애써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세요. 언젠간 아드님도 저 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테니까요."


"허허, 이 사람 보게나."




그 순간, 일은 벌어졌다.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잠시 뒤로 돌린 그 순간.


아직도 내 기억에선 그때 내가 타고 있던 택시의 정면에서 달려오던 그 트럭을 잊을수가 없었다.
운전대를 잡고있는 남자는 잠이 오고 있었는지 고개를 깜빡거렸고.
기사 아저씨는 정면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트럭을 피할만큼 운전에 능숙하지 않았다.














"김경석씨, 정신이 드세요 ?"


몽롱한 정신에서 깨어난 의식으로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마치 장막이 씌여져있는것처럼 귀는 먹먹했고, 몸은 내 몸이 아닌것처럼 무거웠다.
고개를 몆번 흔들자 그제서야 내 얼굴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간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선생님! 김경석 환자 깨어나셨습니다 !"


간호사는 귀가 찢어질듯이 큰 소리로 의사를 불러댔다.
아직 재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로써는 귀를 건드리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몆분동안 멍 하니 지금 내 상황을 생각해보자 떠오르는건 몆가지 없었다.


간호사의 목청만큼 귀가 찢어질듯한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비명을 지르는 아저씨와 내 목소리.
그리고 오랫동안 불에 달군 인두를 대고있는것처럼 고통스러운 내 오른 팔..


오른 팔..



"내 팔 !"


소리를 지르며 내 오른 팔을 바라보았다.




없었다.
내 오른팔이.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었다.
단지 주변의 소리가 모두 단절되는듯한 기분만이 느껴졌다.
손가락 다섯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오른팔이 딱 반절이 되어버린 것이다.


팔꿈치 부분을 기점으로 그 아래부분은 흔적조차 없었다.
믿을수없는 현실에 머리가 점점 아파왔다.


그제서야 의사는 몆몆의 간호사들을 옆에 낀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흰 가운을 입고있는 의사의 모습이 마치 나에게 고문을 내리러 온 악마의 모습처럼 보였다.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17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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