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꿈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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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펌] 꿈 (단편)

8 갱킹 0 3,390 2020.04.21 17:12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절망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희망조차 생각할 수 없는 나락 같은 절망.
꿈속에 계속 있다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말하는 이가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꿈을 말하는 것이다. 내 꿈은 조금 다르다.

“쩝쩝…….”

생각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옆에 놓여있는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갓 만든 것처럼 모짜렐라 치즈가 길게 늘어졌다. 보통 사람이 봤다면 군침을 삼켰겠지만 난 아니다. 이 피자만 벌써 수 백판은 먹고 있으니까.
이렇게 무언가를 먹는 행위자체는 나에게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꿈이라서 먹는다는 개념자체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허기, 통증 등 사람이 육체적으로 느끼는 모든 고통이 없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난 계속해서 무언가를 먹는다. 이것이 진짜 꿈이고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정말 미쳐버릴 테니까.

“맛없다.”

먹던 피자를 내려놓고 옆에 놓인 담배로 손을 옮겼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라이터를 돌려 불을 붙였다.

“후우.”

과거에는 피지 않던 담배를 입에 물고 긴 연기는 뿜어냈다. 담배에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몸에 해롭다고 인지해서 그런 걸까? 담배 연기에서 나오는 향과 맛.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오늘도 한 입 물고 아무렇지도 않게 방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는 담배꽁초가 카펫 위에 떨어졌고 그 작은 불씨가 점점 커졌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휴, 밖에 나가야지.”

밖은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씨발, 진짜 이 미친놈의 비.”

하늘을 원망하듯 노려보며 문 근처에 놓인 우산을 펼쳤다. 우산 위로 전을 굽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너무 리얼한 꿈이었다.
집에서 100m 정도 멀어졌을 때 뒤를 돌아보니 집에서는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런 미련 없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지금 시내 한복판에 서있다. 유명한 맛집, 고급 브랜드 마크가 그려진 신발 매장, 섹시한 외국 여자 모델이 그려진 속옷 가게.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번화가였다. 하지만 이 번화가에는 있어야할 것이 없었다.

“오늘도 한산하구만.”

그 어떤 곳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 번화가에 있는 거라고는 나라는 존재와 끊임없이 내리고 있는 비 뿐.

“오늘은 스테이크 먹으러 가볼까.”

가만히 번화가에 서있자니 심심해진 나는 곧장 옆에 있는 스테이크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문을 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우산 꽂이에 우산을 넣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맨 구석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마치 내가 오는 시간을 딱 맞춰 준비해둔 것 같은 스테이크와 디저트들이 차려져있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자리에 앉아 포크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먹었겠지만 그것마저 귀찮아진 나는 그냥 포크로 큼지막한 고기를 찍어서 들고 뜯어먹었다.
창 밖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문득 이 꿈에 처음 들어섰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도 어김없이 비는 내리고 있었다. 당시 비를 좋아하던 나는 그 비가 너무 좋아서 맞으면서 싸돌아다녔다. 처음 이 꿈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딱 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꼬집어도 아프지 않고, 주변에 아무런 사람도 없고…….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비를 몇 번 맞고 나니 이제는 너무 지겨워졌다. 꿈속에서는 단,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이 더 흐르고 나서야 난 깨달았다. 이 꿈은 하루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 다 먹었네.”

평소라면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웨이터, 계산은 사장 이름 앞으로 해두게.”

라고 아무도 듣지 않는 헛소리를 지껄인 뒤에 밖으로 나왔다.

“자,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오늘 저녁에 먹을 과자라도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술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할까.
누가 본다면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러한 고민은 아무런 의미 없는 고민이다. 밥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고 뭔가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사항도 전혀 없다. 그저 먹고 자기만 할 뿐이다.
이런 감각을 느껴본 사람이 없으니 내가 느끼는 이 미칠 것 같은 고민에 대해서 알 리가 없겠지.

“윌 스미스도 이런 기분으로 영화를 찍었던 것일까.”

아무도 없는 넓은 번화가. 오직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빗소리.

“귀찮아. 그냥 집에 가서 TV나 봐야지.”

그 때 문득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던 집이 떠올랐다.

“아, 맞다.”

별 수 없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널린 게 집이니 아무 곳에 들어가서 잠을 자면 된다. 나에게 있어 마이 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곳이었다.
오늘 따라 낯선 집에 들어가고 싶은 모험심이 생긴 나는 평소에 거들도도 보지 않던 원룸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 원룸들은 전부 입구에 비밀번호가 걸려있기 때문에 쉽게 열 수 없다. 하지만 몇 십 년간 이곳에서 생활한 나는 간단히 그것을 열 수 있었다. 지문을 채취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기계를 고장 내고 문을 밀면 된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개의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문들의 비밀번호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트레스에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짜증도 금방 수그러들었다. 말했다시피 문을 여는 방법은 거의 통달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여자의 방인 모양이다.
안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훑어본 뒤 침대에 누웠다.
책상 위에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게임을 할 수는 있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시 리셋되는 게임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하루가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고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누워서 여기저기 둘러보다보니 책상에 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에는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서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솔로는 서럽구만.”

차라리 사람들이 있는 상태에서 시간이 멈춰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왜 남자도 여자도 없는 세상에 떨어진 것일까. 이 혈기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는 야동이라든지 리얼돌 같은 것들도 많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두 달이다. 계속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진짜 여자를 원하게 된다. 더 이상은 그런 희망고문을 받고 싶지 않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자 점차 수면이라는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내일이면 또 다시 그 불타버린 집 소파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두려웠지만.




*



눈을 떴다. 어김없이 소파 위에 앉아있었다. 옆에는 고소한 치즈냄새가 가득한 피자가 있었다. 한 조각을 먹을까 하다가 관뒀다.
밖으로 나가자 여전히 저주스러운 빗물이 아스팔트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그 빗물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시간을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다시 하루가 갔다.


*


오늘은 일어나자말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로 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지만.
옆에 놓인 리모콘으로 TV를 켰다. 언제나 같은 방송에 같은 대사. 뉴스앵커의 대본마저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오늘은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일명 늑대라고 불리는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또 다른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일명 늑대라고 불리는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또 다른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계속 따라하려다가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윌 스미스도 아이와 만나서 TV에 나오는 슈렉 대사를 따라했었다. 처음에는 그 정도로 슈렉을 본 거야? 싶었지만 그건 보고 싶어서 외운 것이 아니다. 저주스럽게도 계속 봐서 머리에 각인된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밖을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

“으아아아아아!!!!!!!!!!!”

일어나자말자 폭발하는 분노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리모콘에서 시작해서 눈앞에서 뉴스를 보여주고 있는 TV까지. 있는 대로 부셔버렸다. 손에서 피가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플 리가 없는 곳이니까.

“아파……. 아프다고!!!”

손은 아프지 않지만 다른 곳이 너무 아파 아려올 지경이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 높은 곳에 뛰어내려 자살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이 소파로 돌아오게 될 뿐이었다.

“크흐흐흑…….”

당연히 메말랐을 거라 생각했던 눈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계속 리셋 되는 것이기 때문에 메마를 리가 없는 눈이지만.


*

오늘은 웬일로 기분이 조금 나았다. 비가 내리고 있는 밖으로 그냥 나갔다. 우산도 필요 없이 그냥 무턱대로 어디론가 걸어갔다. 이렇게 무턱대로 다른 곳으로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지역에 도착해서 잠이 드는 순간 다시 원점이었다. 간단히 말해 난 멀리가 봤자 다시 돌아오게 된……. 이 저주받은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 정말 지겹구나.”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비를 맞으며 걷고 있을 때 낯선 소리가 고막에 닿았다. 아무런 희망 없이 그쪽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 곳에는 사람 크기 정도의 토끼가 있었다.
첫 경험을 했을 때보다 더욱 거칠게 심장이 요동쳤다. 지금껏 잊고 지냈던 흥분과 긴장이 온 몸을 지배했다. 호흡을 하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 토끼의 뒤를 쫓았다. (만약 토끼가 놀라서 멀리 도망가 버리면 안 되니까.)
비가 내리고 있던 탓에 추적에 재능이 없는 나라도 쉽게 발소리를 없애며 토끼를 쫓을 수 있었다.

“으아! 늦었잖아! 큰일이다!”

순간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빗소리 묻혔다.
녀석은 말을 했다. 토끼 주제에. 그리고 보니 옷도 입고 있었다. 아래에는 큰 엉덩이와 큼지막한 허벅지 때문인지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있었고, 상의는 마치 서커스 단장이 입을 법한 조끼를 입고 있었다.
순간 외국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떠올랐다.

‘토끼를 쫓아가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 지도 몰라!’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17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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