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그놈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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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펌] 그놈 (단편)

8 갱킹 0 3,279 2020.04.23 17:54




며칠 전 찾아온 의문의 한 남자가 남겨놓은 말들이 나의 일상을 완전히 일그러뜨렸다.



어느 날 나는 웬 알아보지도 못할 한 남자가 우두커니 나의 집 앞에 서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사 온 이웃인가?, 하며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집에 가려면 당연히 그래야 했겠지만.)


“저 누구시죠?”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질문에 답했다.


“밖에서 할 얘기는 아닙니다.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죠.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


만약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어쩌겠는가? 어쩌면 당신은 웬 미친놈이지?, 하며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야 하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백배는 더 이로웠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궁색한 변명이라면 변명이랄까. 그에게서는 소설 속, 만화 속등 허구의 매체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상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에게선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이 느껴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가 나에게 붉은 홍조를 띄우며,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어?, 라는 것보다도 더한 달콤함이.


하지만 머지않아 그에게서 느껴지던 달콤함은 곧 약보다도 한약보다도 더 쓰디쓰게 변했다. 마치 그는 집의 구조를 알고 있는지 나보다도 앞장서서 걷다가 거실에 있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을 꺼냈다.


“요즘 싫어하는 사람 있으시죠?”


나는 당황했다. 안 그래도 요즘 눈엣가시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말을 했다.


“그건 당연한 거예요, 사람이 입에 맞는 게 있으면 맞지 않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냐 아니냐의 차이죠.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나는 어느 쪽이냐고?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야? 사람이라도 죽이자는 거야? 이봐, 나는 그렇게 용감하지 않다고. 그보다 당신 미친 거 아니야? 여러 가지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뒤엉켰다. 그러던 중 무의식중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 한중. - 나의 학창시절을 망쳐놓은 주범. 나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걸던 그놈. 현재까지도 자기가 나에게 뭐라도 되는 마냥 지껄이는 그놈. 같은 경력, 친구임에도 나의 상사인 그놈. 내 인생이 이렇게 돼버린 가장 필연적인 곳에 있는 그놈. 사회도 아니라 했지만 나만은 알고 있는 나의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진짜 이유를 가진 그놈. - 나의 오른쪽 손이 굳게 쥐어졌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전자인 것 같군요. 그럼 어때요? 저와 교환살인을 하는 게?”


교환살인이라고? 서로 원하는 사람을 죽여주는 그거? 단어의 존재만 알고 영화에서나 간혹 볼 법한 단어가 나의 앞에서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왔다. 놀랐다. 아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의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니 놀랄 수밖에. 그리고 희열을 느낄 수밖에.


“교환살인은 서로 연관이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에 연관성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되고, 그만큼 안정성도 높아집니다. 그리고 죄책감도 덜 하겠죠. 더구나 서로의 비밀을 간직한 채 상호작용을 한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전과 같이, 넓은 공간속에 정적만이 흘렀다. 아마도 그는 기다리는 걸 싫어하나보다. 내가 말을 꺼낼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 말을 꺼내는 걸 보아하니. 나로서는 굳이 다음 대답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으니 다행이었다.


“어떤가요? 저의 제안이? 저와 손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덥석 손을 잡을 마음이 들겠는가? 보편적으로 아니, 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도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완전히 선을 그을 수도 없었다.


“저… 너무 갑작스럽네요. 솔직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이해도 못하겠구요. 아무튼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제안이군요.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십시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흔쾌히 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며칠 내로 다시 한 번 찾아뵙는 걸로 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떴다. 더 있어봤자 할 얘기도 없었겠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며칠 전 겪은 일들이다. 나는 그 날이 있은 후로 잠을 제대로 청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짧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때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심장박동수가 이처럼 빨라진다. 역으로 그가 꺼낸 제안이 나에게 꽤나 흥미로웠음을 입증해준다. 더하여 그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 또한 점점 커진다.


흥분된 상태로 가만 짐작해보니 그자가 의심스러워진다. 그는 무엇 때문에 굳이 나를 찾아왔으며, 나를 아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걸까.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상관없다. 그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내가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비가 오는 날, 회사에서의 업무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의 집 앞에 그때와 같이, 그때와 다르게 그가 서있다. 나는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를 죽일 수 있는 날이 더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는 말없이 나의 뒤를 따라왔다. 그의 표정이 조금 어둡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이번에는 그가 내게 말을 꺼냈다.


“전에 말씀 드렸던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 진짜 마음은 전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더군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아까보다도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그럼 계약은 성립된 겁니다. 이제는 파기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쪽도 마찬가집니다. 포기해서도 포기할 수도 없어요. 그럼 정보를 교환하죠. 그쪽이 원하는 자는 누굽니까? 저는 이 자입니다.”


나는 그 녀석의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아주 잠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른기침을 하며 탁자를 툭툭 쳤다. 그러자 그는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아주 미인인 여자가 사진 속에서 방긋 웃고 있다. 그 뒤의 또 다른 한 장에도 여자의 사진이 있다. 앞선 사진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여자군요. 이 여자들, 두 명이면 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쪽은 한 명인가보죠? 제가 한 명 더 많군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 사람들을 꼭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방법은 상관없습니다. 강간을 하고 죽이든 토막을 내든, 교통사고를 내든, 목을 조르든… 확실히 목숨만 끊어주시면 상관없습니다.”


“아니요. 거기는 남자고, 여기는 여자지 않습니까. 뭐 서로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리고 살인 방법에 대해서는 저도 마찬가지로 관여하고 싶지가 않군요. 그저 그쪽이 당부한 것과 같이 확실히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날짜는 언제로?…”


그는 정장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캘린더를 꺼내더니 나에게 보여줬다. 그리곤 한 지점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지금으로부터 이틀 후, 토요일이다. 완벽한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서는 조금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 녀석이 하루라도 이 세상과 작별하기를 바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소가 적힌 메모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와 그는 서로의 원수에 대하여 더욱 세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습관, 귀가시간, 혼자 있는 시간 등 더욱 확실하게 죽일 수 있게 만들 계기들에 대하여…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앞으로 이틀 후, 그날 일을 마친 뒤 하루가 지나고 사거리에 있는 빌딩 옥상에서 만나는 걸로 하죠. 그리고 확실히 죽였다는 증거를 들고 오셨으면 합니다. 저도 그럴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배웅했다.


“네. 그럼 그 때 봅시다. 어느 한쪽도 실망하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교환살인……. 정말 좋은 말 아닌가? 내가 싫은 사람을 이 세상에서 없앨 수 있으면서도,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누가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단 말인가? 누군지 몰라도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그도 정말 좋은 사람 아닌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그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 그는 나의 구원자이다. 결과는 열어봐야겠지만…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그날이 왔다. 그와의 마지막 대화가 있은 후로 밤을 제대로 셀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날을 위해 살아왔단 말인가?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당연히 그렇다!, 라고 말할 것이다.


아직 해가 쨍쨍한 시간이지만 나는 벌써 그녀들 중 한명의 집 앞에 와 있다. 그녀가 낮에만 혼자 있다, 라는 정보가 있어서도 한몫 했지만, 흥분되어 뛰는 이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첫 번째 그녀는 택배기사를 가정해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말 낮이라 아파트가 한적한 것도 한몫할 것이다. 택배기사의 복장을 갖추고 두 손에는 박스를 들고 그녀의 집 앞에 섰다. 한번 심호흡을 했다.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른지 조금 지나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택배 왔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문이 열렸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어떡하나 생각했던 나이지만,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의 입술을 손으로 막고 문을 닫았다. 나의 거친 숨소리와 그녀의 웅얼거림만이 집안에 퍼진다. 자기가 왜 이런 짓을 당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만이 그렁그렁하다.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의 목적을 이루어주어야 하니까. 그녀의 보드라운 손이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나의 손을 감싼다. 그리고는 나의 손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연약하기만한 그녀의 근력으로 해낼 리 만무하다. 정말 연예인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는 외모와 몸매다. 지금 죽는 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박스에 담아 가져온 칼을 꺼낸다. 그리곤 그녀의 목 부근에 갖다 댄다. 그녀의 몸이 떨린다.


하얀 그녀의 몸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은 탐이 난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칼을 조금 더 전진시키자 그녀의 떨림이 더욱 커진다. 아무런 제재 없이 살에 닿은 칼은 살을 벌리고, 그 안으로 빨간 피가 튄다. 그녀의 발버둥 때문에 칼은 더욱 깊게 박히고 피는 집안 곳곳에 흩뿌려진다. 나는 왠지 모를 쾌감을 느낀다.


칼에 의해 반쯤 벌려진 목은 덜렁덜렁 흔들릴 것만 같다. 조금 있자 그녀의 몸부림이 완전히 멈춘다. 이상한 전율이 온 몸을 감싼다. 마치 마약과도 같다. 다음번의 그녀는 좀 더 자신 있게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미리 생각해온 방법은 머릿속 밖으로 보내고 영화에서 봤던 이색적인 살인방법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죽어 쓰러진 그녀의 등을 칼로 두어 번 긁어본다. 칼의 이동방향에 따라 그림이라도 그려지듯이 빨간 무언가가 나온다.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탐한다. 짜릿짜릿하다. 그리곤 이내 절정에 다다른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다. 택배기사의 옷을 집어던지고 박스 속에 준비해온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곤 현관문을 열어 나선다. 아직 환한 햇빛이 나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 얘기해 주는 것만 같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을 뒤로하고 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곤 두 번째 그녀의 집으로 출발한다.


또 다른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하니 벌써 석양이 지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다행이다. 그녀는 앞의 그녀와 다르게 밤에 집에 혼자 있기에 기다릴 시간이 주는 것이다. 그녀의 집은 주택이다. 그리고 그 주위로는 도로가 나 있을 뿐, 주변 가까운 곳에는 집이 하나도 없다. 덕분에 나는 담을 넘어 그녀의 집에 직접적으로 침투하기로 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창문이 열려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의 창문이 닫힐까봐 나는 부랴부랴 뛰어갔다.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17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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