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3vs1 (2편)

장르선택 (전체)

선호 장르

  • 전체.
  • 로맨스
  • BL

선호 소재

  • 전체
  • 현대
  • 전문직
  • 스포츠
  • 판타지
  • 무협
  • 동양풍
  • 서양풍
  • 회귀
  • 빙의
  • 환생
  • OOO버스
  • 게임
  • 학원
  • SF
  • GL

전체

1
  1. 1
  2. 2
  3. 3
  4. 4
  5. 5

신작 안내

[공포소설][펌] 3vs1 (2편)

8 갱킹 0 2,973 2020.04.10 18:08




"잘 생각했어 정작가, 시간 넉넉하게 줄테니까 휴가라 생각하고 다녀와"

"자료는 팩스로 보내주세요, 이따가 확인할게요"

"알았어, 그럼 나중에 보자구"

희뿌옇게 동이 터왔지만 재성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동식과의 통화를 마치고 두시간이

 

더 지나서야 은미에게서 문자가 왔다.

-방금 입원수속 마쳤어요.성동정신병원인데 의사말로는 상태가 안좋대요.몇년동안은

 

치료받아야 할거래요-

문자를 읽고 나서야 재성의 발길이 집으로 향했다. 그가 사는 독신자 아파트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재건축

 

허가가 떨어진걸로 알지만, 웬일인지 건설사측은 움직임이 없었다. 단지 내로 들어서자 5층 높이의 건물들

이 들어왔다. 낡은 아파트 벽을 타고 온갖 넝쿨들이 꼬여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것들은 건물 전체를

칭칭 감은채 또아리를 틀고있다. 여기저기 드러난 철근들까지 가세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재성

이 자신의 동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다시 문자가 왔다.

-언니가 잘못했지만..오빠도 나빴어요-

재성의 무표정한 얼굴에 한가닥 조소가 어렸다. 사실 가슴 한켠에 그녀에 대한 연민이 존재했었지만 지금

은 아니었다. 그녀가 식칼을 들고 나타난 후로 일말의 감정도 사라져버렸다. 소름끼치는 느낌과 함께 불쾌

함만이 가득했다. 계단을 올라서자 습한 공기가 확 끼친다. 평소라면 썩은 곰팡이 냄새에 코라도 막았겠지

만 지금은 괜찮았다. 꽉막힌 코에서는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모서리 곳곳에 거미줄이 지저분하게 걸

려있었다. 오랜시간에 걸쳐 덮이고 덮인 거미줄은 새하얗게 뭉쳐진 상태였는데, 온갖 나방들로 기괴하게 장

식되어있었다. 3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 재성의 미간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현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집안은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은정은 작업실로 오기전에 재성의 아파트를 먼저 찾아왔던

것이다. 그녀에게 열쇠를 복사해준 자신의 손을 잘라내버리고 싶었다. 각종 서적들이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나뒹굴고 있었고, 일부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박스 한가득 정리되어 있던 A4용지들도 모조리 흩어

져 있었다. 재성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갔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침대시트가 그를 반긴

다. 팩스위에 놓인 종이를 거칠게 빼들곤 침대에 엉덩이를 붙였다. 전송된 지 얼마 안 된 듯 종이는 따뜻했

다. 동식에게서 온 팩스의 내용은 간단했다.

-기묘한 골목-

경기도 상주시 은곡면에 위치한 이 골목에 붙은 이름이다. 너비 3미터 길이 30미터 가량의 이곳 골목에선

올해 들어서만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명이 자살했고, 세 명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고...

재성이 읽던 종이를 구겨버렸다. 위치와 이름만 알면 된다. 어차피 소문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 자신이 직

접 가서 확인하면 될 터였다. 장롱을 열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꺼냈다. 삼십분가량 움직이자 모든 짐을 쌀

수 있었다. 빠트린 것은 없었다. 수많은 출장의 경험은 그에게 조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았다. 짐을 싸고

나자 한꺼번에 졸음이 몰려왔다. 눕고 싶었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흉하게 찢어진 침대시트가 그의

수면 욕구를 억눌렀다. 억지로 가방을 짊어진 채 집을 나섰다. 구름은 상당히 걷힌 상태였는데, 오랜만에

햇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성이 상주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무렵 이었다. 완전히 곯아떨어진 그를 깨운 건 고속버스기사였다. 버

스는 상주터미널에 도착해 있었고 재성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터미널 내부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노인

몇 명만이 대합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서자 낡은 세면대가 눈에 들어왔다. 거울 속

으로 부쩍 초췌해진 재성의 얼굴이 비쳤다. 푸석푸석한 피부와 두 눈은 한가득 피곤을 머금고 있었다. 헝클

어진 머리 한쪽은 푹 눌려 있었고, 얄팍한 입술 위에는 하얀 껍질이 뒤덮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자 물이

세차게 쏟아졌다. 강한 수압에 사방으로 물방울들이 튀자 열었던 꼭지를 반이나 잠갔다. 양손 가득 물을 모

은 채 얼굴로 끼얹었다. 차가운 느낌에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듯 했다. 재성은 물기도 닦지 않은 채

화장실을 나왔다. 터미널을 빠져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그를 반긴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얼굴 전체가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다. 길게 늘어선 택시하나를 타고선 목적지로 향했다. 번화가를 벗어나자 들판이 즐비한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대규모의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나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은곡에 사시나봐요?”

“아뇨, 부모님이 사세요”

푸근한 인상의 40대 택시기사가 라디오볼륨을 줄이며 말을 걸어왔다. 재성이 초행길인 것을 알면 빙 둘러

서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꽤 많이 바뀌었네요”

“네, 여기도 땅값이 엄청 올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 팔아서 땅이나 사두는 건데”

택시가 개울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자 할증이 붙으면서 계기판의 요금이 껑충 뛰었다.

“이제 다 왔어요, 근데 은곡 어디라고 하셨죠?

재성의 눈앞으로 옹기종기 들어앉은 주택들이 보였다. 주택단지 뒤편으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얼

핏 보기에도 20층이 넘어 보였다.

“혹시 근처에 고시원이 있나요?”

재성의 물음에 택시기사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고시원요? 가만보자.. 고시원이라..”

택시가 주택단지로 들어서자 아이들 서넛이 흙장난을 하는게 보였다.

“분명히 봤는데..이상하네”

골목사이를 몇 바퀴 돌자 어느새 요금이 2만원까지 올라 있었다. 재성이 택시를 세우려는 찰나 택시기사가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 저깄네요”

재성의 눈에 저만치 떨어진 3층짜리 건물이 들어왔다. 갈색 벽돌로 지은 건물은 상당히 낡아보였는데 넓은

대지에 홀로 서있었다.

“수고 하세요”

택시에서 내리자 건물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어스름한 황혼의 노을이 건물을 비추고 있었는데 왠지 모

를 스산함이 느껴졌다. 건물의 출입문은 반쯤 열린 상태였고, 양쪽 모두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일층

은 사용하지 않는 듯 철제셔터가 내려져 있었는데, 큼직한 자물쇠가 세 개나 채워져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

가자 카운터가 보였다. 작은 창문 너머로 총무로 보이는 남자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비스듬히 누운 채 한쪽 손으로 연신 사타구니를 긁어대고 있었다.

“저기...”

“낄낄”

재성이 창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청년이 요란스레 웃는다. 청년의 벌어진 입사이로 못생긴 뻐드렁니가 드러

났다. 청년의 손이 아예 바지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바지 전체가 들썩 거릴 정도로 벅벅 긁던 청년이 별안

간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한 곱슬머리에 눈꼬리가 위로 째진 것이 영락없는 쥐새끼 상이었다.

“방 좀 보려구요”

청년은 뱁새 같은 눈을 들어 재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드르륵”

창문이 열리고 청년이 입을 열었다.

“창문 있는 방은 다 찼어요, 그래도 괜찮으면..”

재성은 잠시 고민했다. 취재차 머무르는 지방마다 고시원을 잡았었다. 그 중 창문 없는 방도 분명 있었지

만, 그때는 일이 목적 이었다. 잠만 잘 수 있으면 충분했었지만 지금은 망설여졌다. 자신의 목적엔 분명히

휴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여기서 고시원은 이 곳 뿐이예요. 어떡하실 거예요?”

재성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청년이 재촉했다.

“그거라도 주세요”

“드르륵”

창문이 닫히고 청년이 카운터에서 나왔다. 열쇠 꾸러미를 쥔 채 청년이 재성 앞으로 다가왔다. 청년의 키

는 재성보다 약간 컸는데, 쇄골이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비밀번호는 5896이예요. 이렇게 순서대로 네 개”

청년이 비밀번호를 누르자 철커덕하고 걸쇠가 열린다. 청년이 들어가자 재성도 뒤따라 들어섰다. 재성을 처

음 반긴 것은 십 수 켤레의 신발들이었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이 그야말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신고있던 슬리퍼를 그것들 위에 대충 벗어놓고는 복도로 올라섰다. 재성도 신발을 벗고서

그를 뒤따랐다. 고시원의 복도는 전체적으로 어두 침침했는데, 드문드문 매달린 벽등 만이 간신히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컴컴한 영화관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복도를 따라 이리저리 꺽어가자 수십개의 방들

이 나타났다.

“여기 중앙에 있는 방들은 복도창문이 있는데, 벌써 다찼어요”

외곽으로 둘러쳐진 복도 사이에는 각각 네 개의 방이 블록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모두 복도 쪽으로 창문이

나있었다. 창문은 재성의 눈높이에 절묘하게 위치해 있었으나 모두 굳게 닫힌 상태였다. 공동세면장과 화장

실을 지나자 복도의 끝이 나타났다. 청년이 멈춰선 곳은 다림질대가 놓여있는 복도의 마지막 방이었다.

다림질대를 들어 한쪽으로 치우자 방문의 손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철커덕"

청년이 열쇠로 문을 열자 새까만 공간이 나타났다. 벽을 더듬어 불을 켜자 두 평 남짓한 방안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오른편으로 침대 매트리스가 길게 놓여 있었고, 왼편에는 책상과 수납장이 들어서 있었다. 침대

받침대의 옆면에도 길쭉한 서랍이 달려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책상아래에는 소형 냉

장고와 함께 플라스틱 휴지통이 있었는데, 휴지통 바닥에는 말라붙은 휴지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조용하게 통화는 할 수 있는데, 담배는 절대로 안됩니다"

청년이 열쇠꾸러미의 고리를 벌려 열쇠를 빼냈다. 열쇠를 내밀자 재성이 손끝으로 그것을 받았다. 사타구

니를 긁어대던 청년의 모습이 떠오르자 열쇠를 내던지듯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 방으로 할게요"

재성이 봉투에서 돈을 꺼내주자 청년이 냉큼 받아 채갔다. 문을 닫고 나서 가방을 내려놓자 그나마 있던 여

유공간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전등스위치 아래에 위치한 또다른 스위치를 누르자 천장 한가운데 있던 환

풍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이잉"

날카로운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기름기가 모조리 말라버린 듯 환풍기에선 철판 긁는 소리가 터져 나

왔다. 뻑뻑한 플라스틱 날개가 회전하면서 내는 소리에 재성의 인상이 절로 찡그러졌다.

"탁"

환풍기를 끄자 거짓말처럼 소음이 사라졌다. 침대 위에 주저앉은 채 가방을 열었다. 구겨진 옷가지와 잡동

사니들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가방 속을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일어서서 전

등을 끄자 칠흑 같은 어둠이 나타났다. 한줌의 빛도 없는 완전한 어둠이다. 조심스럽게 몸을 눕자 척추 쪽

에서 요란한 뼈소리가 터져 나왔다. 눕자마자 재성의 몸이 침대 속으로 점점 가라앉는다. 침대 한가운데 깊

이 파묻히는 기분이다. 재성은 그렇게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재성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리면서 눈이 뜨였다. 얼마나 잔 것일까. 방안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고 주위

는 고요했다. 물먹은 솜 마냥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켰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때

가 가까워져 있었다. 꿈도 꾸지 않고 내리 15시간을 잤던 것이다. 문득 텁텁한 공기가 느껴졌다. 방안은 재

성이 밤새 뿜어낸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 있었다. 방문을 열자 신선한 공기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확

실히 느낌이 달랐다. 깊게 들이마시자 폐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복도로 나온 재성이 엉거주춤 걷기

시작했다. 딱히 갈곳을 정해두진 않았지만 일단은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모퉁이가 보이자 왼쪽으로 방향

을 틀었다. 중앙의 방들이 나타나자 다시금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군데군데 굴러다니는 먼지 덩어리가 눈

에 띄었다.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뭉친 먼지들이 색바랜 솜사탕처럼 보였다. 복도창이 있는 방들은 어제

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공동세면장을 지나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양쪽으로 방

들이 나타났다. 세 걸음 정도를 옮겼을 때 오른쪽에서 따뜻한 습기가 느껴졌다. 곁눈질로 힐끗 보자 중앙방

들 중 하나의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내부를 볼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가슴이 찔리는

듯 하여 그만두었다. 중앙의 방들을 모두 가로지르자 오른쪽에 주방이 나타났다. 잊고 있었던 공복감이 스

멀스멀 피어올랐다. 주방으로 들어서자 싱크대와 가스렌지가 보였다. 싸구려 원목으로 만든 식탁에는 네 개

의 의자가 삐뚤삐뚤 놓여 있었다. 식탁 구석에 놓인 밥통을 여니 반쯤 남은 밥이 보인다. 건조대에서 그릇

하나를 가져와 밥을 담았다.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밑반찬은 보이지 않고, 양파 몇 개만이 덩그러니 채워

져 있었다. 밥그릇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자 싱크대 한쪽으로 냄비하나가 보였다. 냄비를 열자 걸죽한 된

장찌개가 보였다. 냄비를 가져와 밥과 함께 꾸역꾸역 씹었다. 마지막 한술을 뜨려는 순간 주방의 문이 벌

컥 열렸다. 뱁새눈깔의 총무와 건장한 체격의 남성 하나가 동시에 들어섰다. 총무는 재성을 본체만체하고

선 싱크대로 걸어갔다. 같이 온 남성이 재성을 보고 살짝 눈인사를 건넨다. 재성도 얼떨결에 인사를 받아주

자 남성이 씨익 웃는다. 30대 초반이나 됐을까. 건장한 체구에 단정히 깍은 스포츠머리가 꽤나 호감을 자아

냈다. 여기저기를 살피던 총무가 뭔가를 찾는 듯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재성 앞에 놓인 냄비를 발견하

자 별안간 소리를 지른다.

"아니 미쳤어요? 왜 이걸 먹고있어..이거 상했단 말야"

총무가 거칠게 냄비를 빼앗고는 싱크대로 가져간다.

"며칠을 굶으셨나, 왜 상한걸 먹고 지랄이야.. 배탈나면 누구한테 덤터기 씌우려구"

총무는 연신 시부렁거리면서 냄비를 씻었다.

"미안해요, 제가 요즘 냄새를 못 맡아서"

재성이 겸연쩍은 듯 뒷통수를 쓸어 내렸다.

"못 맡으면 다야..혓바닥은 가슴 빨때만 쓰는가.."

총무의 계속되는 무례에 재성의 한쪽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재성이 뭐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설거지를 마

친 총무가 신경질적으로 나가버렸다.

'쥐새끼 같은게..'

재성이 사라지는 총무를 보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왜 냄새를 못 맡으세요? 다치셨어요?"

남아있던 남성의 입에서 가느다란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연약한 목소리였

다.

"아뇨, 알레르기성 축농증 이예요..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요"

"아..그러시구나, 근데 여기는 언제 오셨어요?"

"어제왔어요"

남성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경극배우의 그것처럼 희안하게 들렸다.

"반갑게 지내요, 전 209호실에 있어요"

남성이 손을 내밀자 재성도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남성마저 주방에서 나가버리자 재성이 식탁에서 일어

섰다. 밥이 조금 남았지만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그도 상한걸 알았으면 절대로 먹지 않았을 것이었다.

입안을 헹구고 나서 주방을 나섰다. 자신의 방으로 오는 길에 세면장에 들려 가볍게 세안을 했다. 말

이 공동 세면장이지 세면대 세 개와 샤워실 하나가 전부였다. 물기를 대충 털어버리곤 복도로 나왔다. 먼지

들을 피해 다니며 걸어가자 어느새 중앙복도가 나타났다. 재성의 시선에 복도에 서있는 누군가가 들어왔

다. 까치발을 든 채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재성이 한참을 다가가도록 훔쳐보기에 열중해 있다.

"아흠"

슬며시 헛기침 소리를 내자 슬그머니 돌아본다. 작달만한 키에 중년 남성이었다. 남성은 부끄럽지도 않은

지 재성을 슬며시 노려보고는 복도 한켠으로 사라졌다. 그가 쳐다보던 창문은 아까전에 재성이 보았던 그

창문이었다.

'뭘 보고 있던 거지?'

재성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창문을 힐끔거렸다.

'헛'

일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똑똑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침대에는 희끄무레한 물체가 엎드려 있었는

데, 본능적으로 그것이 여자의 알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끈한 허리라인 아래로 탐스런 둔부가 불

룩 솟아있는 그것은 분명한 여자였다. 시커먼 머리카락이 날개뼈 근처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는

데, 불까지 켠 상태로 대범하게 누워 있었던 것이다. 재성의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혈액이 중심부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생리혈을 질질 흘린 채 다가오던 은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끈적한 암컷의 냄새가 그

의 호흡을 거칠게 만들어버렸다.

"하아"

자신의 방문 앞을 어제처럼 다림질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번쩍 들어 한쪽으로 치운 뒤 문을 열었

다. 책상에 앉고서도 두근거림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실수로 창문을 열어놨던 것일까. 재성은 실수일거

라 믿었다. 어제까지는 닫혀있었으니까 분명히 실수일 것이다. 환기시킨다고 열어놓은 채 깜빡 잠이 들었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며 가방을 풀었다. 옷가지들을 꺼내서 수납장에 차곡차곡 넣

었다. 서적과 사무용품들은 책상 한쪽에 가지런히 진열시켰다.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꺼냈을 때 재성의 입에

선 낮은 욕짓거리가 튀어 나왔다. 노트북은 중간 연결부분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망가져 있었는데, 한여름

혓바닥을 길게 내민 강아지 마냥 시디롬을 길게 내밀고 있었다. 넣어도 넣어도 시디롬은 용수철 처럼 다시

튀어나왔다. 전원을 눌러보았지만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작업실을 빠져 나올 때 가방을 던진 것

이 생각났다. 안전하게 감싸든가 아니면 직접 매고 내려 왔어야했다. 소설을 쓰려면 노트북이 있어야 한

다. 그 안에 모든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부 하드는 안전할 것이다. 대리점에 맡기면 무사

히 복구할 수 있다. 헌데 시간이 없었다. 복구하는데 한달 정도는 우습게 지나가 버릴 것이다. 신경질이 머

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저녁에 편의점에 들러 밑반찬 몇 가지를 샀다. 맛을 모르므로 값싸고 양 많은 반찬을 위주로 구매했다. 2층

으로 올라왔지만 총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얄밉게 생긴 총무의 얼굴에 괜스레 화가 났다. 비밀

번호를 누르려다 문득 담배 생각이 났다. 코가 막히면서 담배 맛 역시 떨어져 버렸지만, 연기를 폐까지 들

이마시는 느낌이 좋았다. 아마도 폐가 담배맛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3층으로 올라서자 쓰레기봉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재활용품부터 해서 잡다한 생활 쓰레기들이 3층을 가득 채우고 메웠다. 3층의 안쪽 역

시 셔터로 굳게 닫힌 상태였는데 한쪽 구석이 찌그러진 채 흉물스런 모습이었다. 다시 한층을 더 올라가자

마침내 옥상이 나타났다. 옥상에는 에어컨 기기 몇 대와 빨랫줄이 길게 널려 있었고, 입구에 놓인 낡은 파

라솔 주위로 담배꽁초가 무수히 널려 있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옥상 끝으로 걸어갔다. 빨랫줄 너

머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인사라도 할 겸 재성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안녕 하세요"

재성의 인사에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자그마한 키에 무표정한 얼굴. 40대로 보이는 남자는

낮에 창문을 엿보던 그 사람이었다.

"......"

남자는 대꾸도 않은 채 조용히 재성을 바라본다. 회사에서 퇴근한 듯 작업복을 입은 모습이다. 남자가 반

도 더 남은 담배를 조용히 비벼 끄곤 재성을 지나쳐 간다. 남자가 지나치면서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를 낸

다.

"미친놈"

재성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남자는 계단을 통해 내려가 버렸고 재성만이 홀로 남았다.

'인사를 했는데 욕설을 한다?'

문득 총무의 무례한 말투가 떠올랐다. 이 고시원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귀신같은 목소리를

내던 청년이 떠올랐고, 알몸으로 엎드려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모두가 이상했다. 늘 접하던 부류의 사람들

이 아니었다. 쓰게 한 번 웃고는 재성이 옥상을 내려왔다. 총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카운터 안에는 티

비만이 홀로 켜져 있었다.

"삑삑삑삑"

비밀번호를 누르자 맑은 쇳소리를 내며 걸쇠가 열렸다. 문을 열자 뒤죽박죽 섞인 신발들이 재성을 반긴다.

발을 뻗어 그것들을 한쪽으로 쓸어버렸다. 발길질 한번에 신발들이 더욱 고루 섞인다. 새로 생긴 공간에 자

신의 운동화를 가지런히 정리하고선 복도로 올라섰다.

"철커덕"

다시금 걸쇠가 채워지면서 쇳소리가 울렸다. 손가락 크기의 수쇠가 구멍속으로 들어가면서 기분좋은 금속

의 마찰음이 터졌다. 반찬 봉지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컴컴한 복도를 가로지르자 알 수 없는 긴장

감이 생겨났다.

'설마..'

분명 실수였을 것이다. 중앙 복도에 들어섰을 땐 묘한 기대감으로 마른침을 연신 삼켜댔다.

'열려있다!'

창문은 여전히 열린 상태였고, 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꿀꺽"

조심스레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도 지나치면서 슬쩍 들여다 볼 참이었다. 재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슬

쩍 고개를 돌렸다.

'어라..'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는 반쯤 접힌 이불만이 놓여 있었고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아가던 재성에게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못 보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재성이 맞은편 복도를 빙 돌아서 다시금 중앙 복도로 들어섰다. 한 번 더 확인해 볼 속셈이었다. 천천히 걸

으며 재성의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갔다.

"스윽"

'헉'

하마터면 들고 있던 반찬봉지를 떨어트릴 뻔 했다. 재성이 쳐다보던 순간에 여자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

던 것이다. 여자는 멍하니 재성을 바라보았는데 아까와는 달리 옷을 입은 상태였다. 창백한 얼굴에 까만 눈

망울은 금방이라도 굴러 나올 듯 커다랗게 보였다. 시원한 콧날에 짙은 속눈썹의 여자는 흔히 보기 힘든 미

인이었다. 여자가 자신을 계속 주시하자 재성이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재성이 놀

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간 떨어질 뻔 했네.."

반찬봉지를 냉장고에 집어넣자 핸드폰이 울렸다. 폴더를 열자 아는 음성이 들린다.

"오빠, 저 은미예요.. 오빠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갑작스런 은미의 말에 재성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전화로 하면 안될까? 나 지금 만나기 곤란한데.."

"바쁘시면 제가 그리로 찾아갈게요, 집으로 가면 되나요?"

"아냐, 오지마.. 나 할 일이 많아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언니랑 관련된 일이야?"

잠시동안 핸드폰에서 대꾸가 없었다.

"전화로는 그렇고 직접 얘기해야 될 문제예요, 어디세요? 제가 지금 갈게요"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려던 재성이 황급히 입을 닫았다. 기묘한 이질감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안되겠어,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

재성의 거절에 다시 또 침묵이 찾아온다.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만나요"

은미와 통화를 끝낸 재성이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일이지? 은정이와 관련된 일인가.."

섣불리 판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자신의 위치는 절대로 노출되어서는 안되었다. 핸드폰

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잠들어 있던 불안감이 슬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위치추적이라도 하면 어쩌지..아니야 그렇게까지 해서 날 찾을 이유가 없어'

재성은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취재를 마칠 때까지 핸드폰을 꺼놓기로 결심했다. 동식에게는 자신이 따

로 전화를 주기로 하고 핸드폰을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전원이 꺼져 있으면 위치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걸 재

성은 알고 있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43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Comment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700 유머 [공포소설][펌] 손 (4편) 8 갱킹 2020.04.13 2998 0
699 유머 [공포소설][펌] 손 (3편) 8 갱킹 2020.04.13 2927 0
698 유머 [공포소설][펌] 손 (2편) 8 갱킹 2020.04.13 2829 0
697 유머 [공포소설][펌] 손 (1편) 8 갱킹 2020.04.13 3052 0
696 유머 [공포소설][펌] 3vs1 (5편/완결) 8 갱킹 2020.04.10 2825 0
695 유머 [공포소설][펌] 3vs1 (4편) 8 갱킹 2020.04.10 2892 0
694 유머 [공포소설][펌] 3vs1 (3편) 8 갱킹 2020.04.10 2918 0
열람중 유머 [공포소설][펌] 3vs1 (2편) 8 갱킹 2020.04.10 2974 0
692 유머 [공포소설][펌] 3vs1 (1편) 8 갱킹 2020.04.10 2854 0
691 유머 [공포소설][펌] 살인게임 (5편/완결) 8 갱킹 2020.04.09 2983 0
690 유머 [공포소설][펌] 살인게임 (4편) 8 갱킹 2020.04.09 3010 0
689 유머 [공포소설][펌] 불청객 (1편) 8 갱킹 2020.04.16 2998 0
688 유머 [공포소설][펌] 이지메 (4편/완결) 8 갱킹 2020.04.15 2974 0
687 유머 [공포소설][펌] 이지메 (3편) 8 갱킹 2020.04.15 3074 0
686 유머 [공포소설][펌] 이지메 (2편) 8 갱킹 2020.04.15 314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