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3vs1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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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펌] 3vs1 (3편)

8 갱킹 0 2,917 2020.04.10 18:09



얼마나 지났을까 자는 것처럼 보였던 재성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을 떠도는 잡념때문이 아니었다.

그까짓 잡생각쯤이야 집중하면 얼마든지 없애버릴 수 있었다. 그를 괴롭힌 건 다른 존재였다.

"윙.."

좁은 공간 속을 모기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면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번번이 그것

이 방해했다. 귓가로 가깝게 날아드는 그것의 날개 소리는 가벼운 두통마저 자아냈다. 불을 켜고 시계를 쳐

다보았다. 새벽 한시. 더러운 흡혈귀 한마리 때문에 가장 어중간한 시간에 잠이 깨버린 것이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가며 모기를 찾았다. 재성의 살기라도 감지한 것일까. 끈질기게 날라들던 그것이 감쪽같이 사라

져 버렸다.

'제깟놈이 사라져 봤자지'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놈이 숨을 곳은 제한되어 있었다. 눈빛을 번뜩이며 구석구석을 살피던 찰나 마침내 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기는 기다란 다리를 모은 채 문 손잡이에 붙어있었다. 휴지 몇 장을 거칠게 뜯고

는 천천히 다가갔다. 숨도 쉬지 않고서 살금살금 손을 뻗어 갔다.바로 그때였다. 재성은 자신의 눈을 의심

했다. 분명 자신이 착각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자 마침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의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어찌나 천천히 돌아갔던지 매달린 모기가 날아가지

도 않았다. 밀리미터 단위로 돌아가는 손잡이를 보자 재성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 모기가 백팔십

도를 넘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까지 족히 삼분은 걸린 듯 했다. 재성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글송

글 맺혔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찰칵"

가볍게 손잡이를 당기는 소리가 났다.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재성은 꼼짝도 않은 채 긴장하고 있었다. 문

이 잠긴 것을 알자 돌렸던 손잡이를 풀어놓는다. 열었던 속도에 비하면 쏜살같은 빠르기였다. 누군가가 사

라진 뒤에도 재성은 한동안 쥐 죽은 듯이 있었다. 문을 열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고시원 같으니라구'

삼십분 가량을 잠자코 있던 재성이 마침내 욕설을 퍼부었다.

"근데 도대체 누구지.."

아침 일곱시가 넘어서야 재성이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 비치된 작은 소화기를 든 채 강하게 문을 밀었다.

“덜컥”

무언가가 세차게 문에 부딪혔다.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란 재성이 반사적으로 소화기를 쳐들었다. 복도로

나가자 넘어진 다림질대가 보였다.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누군가 놓아둔 다림질대에 문이 부딪힌 것이

다. 허탈감 뒤에는 화까지 치밀어 올랐다. 누군가에게 풀지 않으면 화병이 생길 것 같았다. 재성이 성큼성

큼 복도를 걸었다. 중앙복도를 통과하자 예의 그 열린 창문이 나타났지만, 그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

다. 주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총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카운터로 나갔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총무는 카운터에도 없었다. 식식거리며 한참을 기다리자 아래층에서 누군가 올라왔다.

“총무...”

재성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뜯고 있던 총무가 재성을 본체만체 한

다.

“당신, 고시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재성의 굳은 음성에 그제야 재성을 주시한다.

“뭔 소리야? 아침부터..”

끝까지 반말이다.

“어제 새벽에 도둑이 들어왔단 말이야”

재성이 소리를 빽 질렀다.

“누구한테 도둑이 들었는데? 알아듣게 설명을 해봐”

총무는 재성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속으로 이를 갈면서 어젯밤 상황을 설명했다.

“뭐야. 난 또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총무가 뱁새눈깔을 찌푸린 채 계단에 올라섰다. 재성을 지나친 뒤 옥상으로 올라가려는 눈치였다. 할 수만

있다면 수십 가지의 방법으로 저놈을 고문하고 싶었다. 살려달라고 빌때까지 지옥의 고통을 안겨주고 싶었

다. 3층으로 향하는 계단 중간쯤에서 총무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정 불안하거든 한순경이랑 얘기해봐, 지금 신발 신고 있네”

총무의 말에 재성이 안쪽을 쳐다봤다. 문이 열리고 경찰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큼직한 체

구에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바로 주방에서 만난 그 남자였다.

“경찰..이셨어요?”

남성은 하얀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 있나요? 고함소리가 들리던데”

낯간지러운 미성이 흘러 나왔다. 재성이 계단 쪽을 보자 총무는 사라져버린 후였다. 재성이 자초지정을 설

명하자 남성이 말없이 경청했다.

“제가 봤을 때는 누가 장난 친 것 같군요, 아니면 방을 잘못 찾았거나요”

남성은 부드러운 억양으로 재성을 위로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문 잘 잠그고 자면 아무일 없을 거예요”

그의 말에 묘한 신뢰가 느껴진다. 사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자신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서 객관적

인 판단을 못하는 것일수도 있었다.

“정재성입니다. 직업은 소설가인데 아직 내세울 작품은 없네요”

재성이 진심을 담아 자신을 소개했다.

“한명철 입니다. 여기 은곡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그냥 한순경으로 부르세요”

한순경이 재성의 어깨를 가볍게 친 뒤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가 사라지자 재성도 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이

홀가분해지자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중앙복도로 들어서자 좀전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녀의 창문은 분명히

열려 있었다. 창문을 지나치면서 재성이 눈알을 힘껏 굴렸다. 지난번처럼 정면으로 마주치면 곤란했다. 고

개는 정면에 두면서 눈알만이 창문쪽으로 쏠렸다. 맙소사,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창문에 뭔가가 아른거렸지만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찌나 세게 돌렸는지 눈알이 뻐근하다. 대체 뭘

까. 재성이 볼일을 보는 척 하며 시선을 돌렸다. 창문에는 여자가 얼굴을 내민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

었다.

“네?”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재성이 다가갔다.

“....안 나와요”

“뭐라구요?”

여자가 한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

“물.이.안.나.와.요”

재성의 표정도 그녀처럼 멍해졌다.

“물이 안 나온다구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야릇한 생각 하나가 스쳐갔다.

“제가 잠시 봐도 될까요? 간단한 거라면 봐드릴 수 있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럼 실례 하겠습니다”

재성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방안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별다른 장식없이 깔끔한 방이었

다. 책상 한구석에 티슈와 화장품들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는..일순 재성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 옆에는 생

리대가 있었다. 뜯지도 않은 새것이었지만 상상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그녀는 싱싱한 처녀였고 게다가 아

름답기까지 했다. 매달 한 사발의 피를 쏟아내는 젊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세..세면대는 어디 있죠?”

재성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하기사 애초에 세면대가 있을리 없었다.

“물이 안나와요”

여자가 한숨을 쉬듯 토해낸다. 문득 아랫도리가 뻐근해져왔다. 엉거주춤 서 있는 재성에게 그녀가 손가락

을 들어 보인다.

“물이 안나와요”

그녀의 손가락은 정확히 사타구니 사이를 가리켰고, 재성은 한참동안이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야했

다. 뒤늦게 야한 생각이 떠오르자 걷잡을 수 없이 성욕이 솟구쳤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페니

스가 강하게 바지를 압박했다.

“실..실례했습니다”

재성이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어기적거리며 방으로 돌아온 재성이 침대에 주저 앉았다.

“물이 안 나오다니..그게 안 나올 수도 있는 건가”

재성의 경험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물이 안 나올수는 없었다. 티비에서 할례의식을 치룬 여자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들에게 섹스는 즐거움이 아닌 고통 자체였다. 음핵을 제거하고 나면 아무런 기쁨도 못 느끼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그 의식에 매년 200만명이 넘는 어린 소녀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는 것이었다. 시술 도중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녀도 할례를 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하게 맛이 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까만 동공이 떠오른다. 그건 미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재성이 차근차근 생각을 정

리해 나갔다. 그 날 저녁 해가 지자마자 재성이 어딘가로 외출을 했다. 잠시 후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마

사지오일이 들려 있었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가볍게 노크 한 뒤 얼른 문을 열었다. 방안의 불은 꺼진 상태였는데 침대위에 그녀가 엎드려 있었다. 언젠

가 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창문이 있는 방이라서 그런지 완벽한 어둠은 아니었다.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벗은 재성이 침대로 올라갔다.

“오일을 사왔어요...물이 안나와도 아프지 않을 겁니다”

재성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로 향했다. 심장은 터질것처럼 울려댔고 극도의 흥분으로 얼굴은 붉게 달아 올라

있었다.

‘헛’

차가웠다. 그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엉덩이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싸늘했다.

‘옷을 벗고 있어서 그런가’

재성의 손이 사타구니 사이로 다가갔다. 그곳에 손을 갖다댄 순간 재성은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았다. 그곳에는 한줌의 수분기도 없었다. 바싹 마른 생고무를 만지는 듯 했다. 오일의 뚜껑을 열고 힘차게

짜냈다. 번들거리는 유분기가 손바닥에 가득 쏟아졌다. 그녀의 생식기에 오일을 듬뿍 발랐다. 구석구석 꼼

꼼하게 바르고 나자 마침내 그것이 온전한 촉감을 전해왔다. 바싹 독이 오른 자신의 그곳에도 오일을 바른

뒤 천천히 엎어졌다. 질퍽한 느낌과 함께 둘의 몸이 완전히 포개졌다. 재성의 허리운동에 그녀의 몸도 들썩

거렸다. 그녀의 의사가 아닌 재성의 움직임에 따라 밀려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미동도 않은 채 계속 침묵했

다.

“괜찮아요?”

재성이 연신 움직여대며 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정말 괜찮아요?”

재성이 연거푸 묻는다.

“그냥 하고 가요...”

모기만한 소리로 그녀가 대답한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대꾸가 없다. 재성은 두 번이나 더 정상에 오

른 뒤에 침대를 내려왔다. 그녀의 몸에선 어느새 온기가 돌아 있었고, 옅은 땀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

다. 옷을 챙겨 입은 재성이 인사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조용히 문을 연 뒤 복도로 나왔다. 후련한 배설

의 쾌감에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재성은 크게 놀랐다.

창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누가 봤을까? 아니야 못 봤을거야’

재성이 생각을 고쳐 먹었다.

‘봤으면 어때 둘다 어엿한 성인인데’

재성이 방으로 왔을땐 여덟시도 안 된 초저녁이었다. 기분좋은 노곤함이 몰려왔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얼마 안가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깜짝 놀란 재성이 헛바람을 터트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불을 켜고 보자 방문이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재

빨리 손잡이의 돌기를 눌러 문을 잠갔다. 시계를 보니 겨우 12시가 넘어 있었다.

‘한순경의 말에도 안심하지 못했던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자려고 누웠지만 달아난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삼십

분쯤 뒤척거리다 체념하고선 몸을 일으켰다. 책상에 앉아 펜과 종이를 펼쳤다. 취재를 나가기까진 시간이

많았다. 이왕 노트북이 망가진 마당에 단편소설이라도 쓸 생각이었다. 시나리오 구상에 골몰해 있던 그때

무엇인가가 조용히 움직였다. 극히 미미한 소리였지만 적막한 방안에선 결코 놓칠 수 없는 소리였다. 재성

의 고개가 자동적으로 돌아갔다.

방문의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맙소사’


뜬눈으로 밤을 세운 뒤 아침이 되자 재성은 방을 나왔다. 마음에 걸리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고시원 건물

을 빠져 나온 뒤 편의점 옆에 위치한 공중전화로 향했다. 간간히 밀려들던 꽃샘추위마저 사라져버린 완연

한 봄이었다. 따스한 봄날씨를 다들 반겼지만 재성은 반대였다. 꽃가루나 황사 따위가 날리는 봄보다는 겨

울이 훨씬 좋았다. 막힌 코를 주물럭거리며 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자 익숙한

컬러링이 흘러나온다.

"여보세요"

"저예요, 편집장님"

"정작가?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지금 상주에 있는거 맞지?"

"네, 그저께 왔어요"

"빨리도 갔네. 근데 이건 누구 전화야? 못보던 번호인데"

"공중전화예요..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핸드폰을 못써요"

"그래?"

"저, 편집장님.."

"응?"

재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찾는 전화 없었죠?"

"정작가 찾는 전화? 아니 없었는데 왜? 누가 찾아올 사람 있어?"

"아니예요, 혹시 누가 저 찾아도 모른다고 해주세요"

"무슨 일 있는거야?"

"그냥 그렇게만 대답해 주면 돼요,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재성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싶어 동식에게 전화했지만 예상했던 바였다. 은미

의 전화를 받고나서 불안했었는데, 기우인 듯 싶었다. 하기사 은미가 동식의 존재를 알 리가 없었다. 동식

의 존재는 은정도 몰랐다.

"그럼 누구지?"

고시원 계단을 올라가던 재성이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혔다. 골똘히 생각하느라 누가 내려오는지 못봤던

모양이다. 재성과 부딪힌 사람이 사나운 인상을 짓는다. 남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옥상에서 재

성에게 욕설을 했던 그 사람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친놈"

남성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재성을 노려보았다. 죽일듯한 기세로 쳐다보던 남성이 다시 계단을 내려가 버

렸다.

'혹시'

짜릿한 전류 하나가 재성의 등을 관통했다. 방으로 오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점검해 보았다.

'하지만 왜?'

합당한 이유가 없었다.

'담배 필 때 말 건 것이 화가 났을까?'

자신이 생각해 놓고도 멍청해 보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별안간 창문을 훔쳐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엿보는 걸 방해했다고 느낀 걸까?'

그 역시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자신은 복도를 지나갔을 뿐이었다. 만약 그 남자가 범인이라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재성은 자신이 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잠잠하던 동공이 점점 커지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같이 있는 걸 봤어, 그 여자랑 관계하는 걸 훔쳐 본게 틀림없어'

기분 나쁜 닭살이 우두둑 솟아올랐다. 열려 있던 창문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좋아하던 여자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질투심?'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재성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 날 재성은 초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밤에도

문고리가 돌아간다면 신고할 작정이었다. 깊게 잠들지 못한 재성이 피곤한 기색으로 문고리를 주시했다. 새

벽 두시가 넘을 때까지 지켜보았지만 문고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인내심을 가지

고 쳐다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이 되자 담배를 꺼내 물고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

상에서는 한순경이 추리닝 차림으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웬 줄넘기세요?"

"아..네..하아..근무 마치고..하아..운동하는 거예요"

한순경은 오분 정도를 더 뛴 뒤에야 줄넘기를 내려 놓았다.

"물어볼게 있는데요"

목에 걸린 수건으로 땀을 닦던 한순경이 재성을 쳐다보았다.

"고시원 사람 중에 키작은 아저씨 있잖아요..."

"키작은 아저씨요?"

한순경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 작업복 입고 다니는 사람 있잖아요"

"아! 김근치 그 사람 말하는구나, 근데 그건 왜요?"

"이름이 김근치 인가요?"

"네, 본명이예요"

"사실...그 사람이 좀 수상해요"

재성이 그 남자와 있었던 일은 상세히 털어놓았다. 물론 여자에 대한 얘기는 슬쩍 건너뛰었다. 얘기를 듣

던 한순경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흐음"

한순경이 주위를 두리번 거린 뒤 재성에게 낮게 속삭였다.

"김근치 그 사람 전과자예요"

"전과자요?"

"네, 두명을 토막내고 개사료로 던져준 놈이죠"

"그럴수가.."

재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20년 꼬박 채우고 작년에 출소했어요, 지금은 공장에 다니는데 아무튼 위험한 놈이예요"

뜻밖의 사실은 재성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재성이 두려운 표정을 짓자 한순경이 어깨를 두드렸다.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외부사람 소행일 수도 있구요"

멍하니 서있는 재성에게 한순경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그의 입이 재성의 귓가로 향했다.

"총무있죠? 그 사람도 정상인은 아니예요"

"총무가요?"

한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과 8범인데 중학생 때부터 소년원에 들락거렸어요"

"그렇게나 많이요?"

"전과8범이긴 한데 사실 잡범이죠... 소매치기나 공갈친 것들이 대부분이예요"

총무의 뱁새 눈깔이 떠올랐다.

"제가 여기있는 이유도 사실 그거 때문이예요"

재성이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한순경을 쳐다봤다.

"제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을 억제시키고 있는겁니다."

"아..그렇군요"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하시나"

별안간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그게.."

눈에 띄게 당황한 재성이 말을 더듬거렸다.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총무가 바싹 다가섰다.

"어흠..쿨럭..쿨럭"

한순경이 요란한 기침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다. 옥상을 내려가는 그를 보며 총무가 뱁새 눈깔을 더욱 가늘

게 떴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밥통에 밥 있죠?"

재성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총무와 떨어졌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끈적한 시선이 그의 등에 쏟아졌다. 계

단을 내려오면서 한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한순경은 외부인의 소행일수도 있다고 했지만 가정에 불과했다.

이틀동안 조용하긴 했지만 한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밤 10시가 되자 재성이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주방

을 지나 현관문까지 간 재성이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자 준비한 테이프를 꺼냈다. 미

리 잘라놓은 스카치 테이프를 문에다 꼼꼼하게 부착시켰다. 문에서 벽까지 길게 붙이고 나서 다시 한번 주

위를 살폈다. 방으로 돌아온 뒤 문을 잠갔다. 깍지를 낀 채 고개를 숙이자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트릭은 완

벽했다. 만약 오늘 문고리가 돌아간다면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재성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문고

리에 쏟아졌다. 새벽 한시가 넘자 피곤이 몰려들었다. 뻑뻑한 눈을 억지로 벌리고서 잠을 이겨냈다.

"슥"

막 하품을 하던 재성의 눈에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옳거니'

찔끔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나서 한곳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드륵"

문고리가 돌아가고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재성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재성이

다섯시가 되자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서늘한 살기가 몰아

치는 듯 했다. 뒷꿈치를 들고서 천천히 현관으로 향했다. 주변을 힐끔거린 뒤에 얼굴을 문에 가져갔다. 테

이프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자신이 붙여놓은 상태 그대로였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43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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