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3vs1 (5편/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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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펌] 3vs1 (5편/완결)

8 갱킹 0 2,824 2020.04.10 18:12




허겁지겁 공사장을 빠져나오며 재성이 고민했다. 총무에 대한 분노는 달아난 지 오래였다. 총무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 자매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겉으로는 부정했지만 본능이 쉴새없이 속삭였다.

‘널 죽이러 온거야’

자신의 위치를 묻던 은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은정을 퇴원 시킨 걸까?’

재성은 문득 자신이 착각 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은정은 애초에 정신병원으로 가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

다. 하나가 해결되자 또 하나가 고개를 쳐들었다.

‘여긴 어떻게 알아냈지?’

동식을 생각해 보았지만 가능성은 희박했다. 은정은 동식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 잡지사에 글을 연재한 사

실조차 꺼낸 적이 없었다. 재성은 침착하게 이동했다. 무릎이 휘청거렸지만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넘어질

수는 없었다. 걸으면서 머리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동식을 제외시키자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핸드폰

은 오래전에 꺼두었고, 아무에게도 이곳 얘기는 꺼낸 적이 없었다.

“빠아앙”

덤프트럭 한 대가 날카로운 경적소리를 울리며 지나갔다.

‘아뿔싸’

순간적으로 팩스용지가 떠올랐다. 자신의 아파트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온 그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열

쇠가 은정에게 있었으니 그것을 발견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이곳으로 온 뒤 은미가 총무를 유혹했을 것이

다. 안봐도 뻔했다. 멍청한 총무놈은 멋도 멋도 모르고 동조했겠지. 재성은 자신의 미련스러움을 탓하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드디어 목적지가 눈앞에 드러났다. 열 평 남짓한 그곳 주차장에는 순찰차 한 대가 세워

져 있었다. 한순경이 근무하는 은곡 제2지구대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경찰관 두명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

다.

“한순경 있나요..”

“무슨 일이시죠?”

중년의 경찰관 한명이 재성에게 다가왔다. 재성이 입을 열려는 순간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한순경이 의아

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 분이 자네를 찾던데 아는 분인가?”

경찰관의 말에 한순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멍들고 퉁퉁 부은 재성의 얼굴을 보자 그의 표정이 안쓰

럽게 굳어진다. 그가 재성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재성을 벤치에 앉힌 뒤 자판기에서 우유 두잔을 뽑아온

다.

“대체 무슨 일이죠? 얼굴은 누가 그랬어요?”

우유를 한모금 마시자 입안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우유를 옆에다 내려놓고는 재성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열흘 전부터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은정부터해서 은미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얘기하

고 나자 한순경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세상에...”

재성은 그의 표정이 이해가 갔다. 자신도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신고 접수하고 올게요”

한순경이 지구대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문 너머로 그가 동료 경찰관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됐어...이제 다 해결 될거야”

출입문이 열리고 한순경이 밖으로 나왔다.

“지금 곧장 고시원에 가 계세요, 지금 모두 출동할거니까 여기도 위험해요”

재성이 반쯤 부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가셔서 문 꼭 잠그고 계세요, 체포하는 즉시 그리로 갈게요”

“알겠어요..”

재성이 힘없이 대답했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돈이 없었다. 가방도 고시원에 있고,

그들이 체포되면 진술도 해야 할 것이었다. 한순경이 다시 지구대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재성이 그곳을 빠

져 나왔다. 붓기 때문에 시야가 많이 제한되었지만 주위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혹시

나 싶어 카운터를 살폈지만 총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이 체포되길 바랄 뿐

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재성이 문을 굳게 잠갔다. 수납장을 눕혀 문 앞을 가렸다. 냉장고의 코드를

뽑은 뒤 수납장 위로 올렸다. 하나의 가능성도 허용해선 안된다. 문앞을 꽁꽁 막고 나자 불안감이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시계가 저녁 일곱시를 가리켰을 때 노크

가 울렸다.

"저예요 정작가님“

한순경의 목소리였다.

“잠깐만요”

냉장고를 밀어내고 수납장을 일으켜 세우자 문을 열 수 있었다. 한순경이 방안의 광경을 보고 무겁게 고개

를 끄덕인다.

“잡았나요?”

“그게...종적이 묘연합니다, 공사장에도 없고 근처에도 없어요”

“그럴리가요...”

재성의 입에서 실망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걱정말아요, 곧 잡을 테니까. 지금 본서에서도 형사들이 출동했어요. 몽땅 돌아다니면서 수색 중이예요”

“그렇군요”

조금은 안심이 되는 눈치였다.

“서서히 범위를 좁혀 가고 있으니 한 시간 안으로 어떻게든 결론이 날겁니다, 한 시간만 더 숨어 계세요”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여기 말고 제방에 가 계세요, 총무놈이 열쇠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요”

“아, 듣고보니 그렇군요”

“그럼 한 시간 후에 봅시다”

한순경이 따뜻한 눈빛을 건네고는 이내 뒤돌아 나갔다. 후다닥 뛰어가는 그를 보며 재성도 복도를 가로 질

렀다. 한순경의 방 앞에 도착하자 지체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처척”

하지만 무엇인가에 막힌 듯 문고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방문은 잠겨 있었다.

‘이런...’

방문이 잠겨 있을 거라곤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다. 한순경 역시 실수했던 것이다. 꼼꼼하게 챙길 정신이 둘

에게는 부족했던 것이다. 다시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계속 있으려니 찝찝했다. 잃어버린 열쇠와 함께

총무의 신경질 부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새끼가 갖고 있어‘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했다. 잠시나마 작업복 남성을 의심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두 번 당할 수는 없었

다. 성큼성큼 걸어서 중앙복도로 다가갔다. 벌써 이십분이나 흘러 있었다. 이제 사십분만 숨어 있으면 상황

은 종료될 터였다. 노크도 않은 채 방문을 열었다. 여성은 언제나 그렇듯이 알몸으로 엎드려 있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없다’

문을 잠그고는 창문을 닫았다. 이 소란에도 그녀는 여전히 미동도 않는다. 그녀의 매끄러운 굴곡이 시선에

들어왔다. 움푹 들어간 허리에 비해 유달리 엉덩이가 탱탱하다. 새삼 그녀의 몸매가 완벽하게 느껴졌다. 생

고무 같던 그녀의 생식기가 떠올랐다. 어릴 때 좋아하던 곶감의 감촉과도 비슷했다. 죽어있던 페니스가 어

느 샌가 고개를 쳐들었다. 재성이 한점의 망설임도 없이 하의를 벗었다. 옷을 벗고 나자 오일이 떠올랐다.

자신의 책상 한쪽에 곱게 모셔둔 그것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그녀의 화장품 하나

를 집어 들었다. 다시 옷을 입기가 싫었다. 옷을 입고서 자신의 방으로 가는 건 더욱 꺼림칙한 일이었다.

로션을 손바닥에 대고 거칠게 찍어 내렸다. 쉬지 않고 찍어대자 한손 가득 하얀 덩어리들을 뽑아 낼 수 있

었다. 손바닥을 포개어 덩어리를 나눈 뒤 그녀의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손끝을 대는 순간 익숙한 차가움

이 전해져 왔다. 예상대로 그녀의 몸은 공기보다 차가웠다. 골고루 바른뒤 자신의 물건에도 마저 발랐다.

“물컹”

처음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자신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얼른 정상에 올라야 했다. 재성의 허벅지와 그녀의

둔부가 부딪히면서 철썩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성의 몸놀림이 빨라질수록 철썩대는 소리대신 질퍽한

요분질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흐윽...”

마지막 한방울까지 그녀의 안에다 쏟아낸 재성이 몸을 일으켰다. 페니스를 중심으로 사타구니 전체가 유분

기로 번들거렸다. 티슈를 뜯어 대충 닦아 낸 뒤 옷을 입었다. 오늘따라 특히 반응이 없다. 저번보다

도 심했다. 흡사 단백질 인형과 정사를 나눈 기분이었다. 재성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방안이 삽시간에 깜

깜해졌다. 창문에서 흘러들어온 빛으로 약간의 밝기가 있었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창문을 미세하게 연 뒤 복도를 살폈다. 복도 전체가 깜깜했다. 곧이어 방에

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며 그들이 빠져 나오자 고시원 전체가 들썩거렸

다. 그들이 몽땅 나가자 다시금 적막이 찾아왔다. 재성이 잠시 자신의 행보를 고민하고 서있는 사이, 무엇

인가가 복도로 다가왔다. 또깍또깍 하이힐 소리가 복도바닥을 울렸다.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다니...’

재성의 눈가가 조금 찡그려졌다. 또깍거리는 소리가 중앙 복도를 지나 점점 멀어졌다. 얼핏 들어보니 소리

가 재성의 방쪽으로 향하는 듯 싶었다.

순간 찌릿한 전류 하나가 정수리에 내려 꽂혔다. 어금니가 힘껏 맞물린 채 주먹 쥔 손에서 땀이 맺혀 올라

왔다.

‘은정이다!’

그녀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이곳까지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방으로 곧장 향하는 걸 보니 총무놈도 같이

온 듯 싶었다. 총무는 무섭지 않았다. 쇄골이 드러날 정도로 말라빠진 그는 재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은미도 섬뜩하긴 했지만 은정만큼은 아니었다. 은미는 언니와 달리 정상이었던 것이다.

‘세명이라...’

자신의 죽음을 원하는 세명이 있다. 더 이상 피할 구석은 없었다.

‘오냐, 너희들이 원하는 싸움을 해주마’

깊숙한 곳에서 뜨끈한 기운이 올라왔다. 골목에서 두드려 맞았던 상처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재성이 마음속으로 삼대 일의 싸움을 선포했다. 도장까지 찍은 채 그들에게 선전포고장을 날렸다. 결심이

서자 망설일 틈이 없었다. 은정이 가버린 지금이 기회였다. 소화기를 집어 든 채 방문을 열었다. 공포로만

가득하던 그의 마음속에 어느새 투쟁심이 솟구쳤다. 어설프게 덤벼들면 소화기를 골통을 부숴버릴 작정이었

다. 경찰들의 증언과 나타난 정황들이 그를 정당방위로 만들어 줄 것이었다. 복도의 끝에 누군가 서있었

다. 소화기를 번쩍 든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가까이 가자 작업복 차림의 남성인 것을 깨달았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한때 그를 의심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는 대꾸도 없이 재성을 쳐다본다.

그를 지나쳐 복도를 건너자 현관이 나타났다. 재성의 신발은 보이지 않았고 슬리퍼 몇 짝만이 제각각 흩어

져 있었다. 발에 채이는 대로 주워 신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일층 셔터문 앞에 예상대로 총무와 은미가 서

있었다.

“은미 너 미쳤구나”

재성이 나타나자 둘은 꽤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오빠...”

“닥쳐, 너도 정신나간 니 언니랑 똑같은 년이야”

은미의 얼굴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그리고 총무 너 이 강아지야”

총무가 슬쩍 뒤로 물러선다. 발에 부딪힌 셔터문이 시끄럽게 요동친다.

“니가 무슨 생각으로 저년들을 돕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둬. 넌 엄연한 살인죄의 공범이야. 니

가 안죽이면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멍청한 니 생각일 뿐이야”

“나..나는...”

“알아, 알아... 아무짓도 안했다고?”

총무의 겁먹은 눈이 고개와 함께 세차게 끄덕거린다.

“5초줄게, 그 안에 사라지면 눈감아 주겠어. 하나, 둘...”

총무는 재성이 셋도 세기 전에 도망가 버렸다. 예상대로 총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제 이대 일이 남았

다.

“오빠...”

은미의 짧은 단발머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타다닥”

별안간 계단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은정이 눈을 부릅뜬 채 내려오고 있었다.

“너희는 끝났어”

재성이 비웃듯이 내뱉고는 고시원을 빠져나갔다. 조금만 나가면 경찰들이 쫙 깔려 있을 터였다. 뒤를 돌아

보자 두 자매가 재성을 뒤쫓고 있었다. 하이힐이 거추장스러웠던지 은정이 벗어버린다. 맨발로 달려들자 제

법 속도가 빨라졌다.

“미친년이 지랄 염병을 해요”

재성이 약이라도 올리듯 천천히 도망쳤다. 그렇게 몇 분을 도망치던 재성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이상했

다. 예상대로라면 경찰들이 눈에 띄어야 했다. 경찰에게 그녀들을 인도하려면 재성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

다.

‘무슨 수작을 부린거지’

은미가 재성의 속내를 짐작한 듯 교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아아”

은정이 숨겨둔 식칼을 치켜 세우고는 괴성을 지른다. 동공에 흰자위가 가득하다. 은정은 완벽하게 미친 버

린게 확실했다. 재성이 다시 도망쳤다. 뛰다 보니 문득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

만, 이런 일이 또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은정은 몇 년만 지나면 다시 정신병원에서 나올 것이다.

그때 또 자신을 죽이려 들면 어쩐단 말인가. 평생을 쫓겨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

다.

“우아아악”

은정이 또다시 고함을 질러댄다. 재성의 머릿속에 계획 하나가 떠올랐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더 이상 쫓겨

다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망치는 와중에 재성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바쁘게 움직이며 자신

이 원하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주택 단지에 들어섰을 때 마침내 그것을 찾았다. 분리수거대 위에 높이 매

달린 그것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재성이 찾은 것은 CCTV였다. 자신의 정당방위를 입증해 줄 고마운 친

구였다. 달리던 재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들었던 소화기를 옆에다 내려놓자 그녀들이 들이닥쳤다.

“언니! 죽여버려”

은미가 표독스럽게 외친다.

‘그래 그게 니 본모습 일테지’

은정이 코앞까지 달려들었지만 재성은 피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식칼이 날아오자 그제야 몸을 비틀었다.

“으윽”

어깨부터 팔꿈치 길게 베였다. 불에 댄 것처럼 팔 전체가 화끈거렸다. 재성이 한번더 CCTV를 바라본 뒤 소

화기를 집어 들었다.

“우아악”

은정의 벌어진 입에서 걸쭉한 국물이 흘러내렸다.

“죽어버려!”

재성이 있는 힘껏 소화기를 집어 던졌다. 한 방으로 끝낼 수 있게 젖먹던 힘까지 짜냈다.

“퍼억”

소름끼치는 음향과 함께 은정의 얼굴이 무서운 속도로 젖혀졌다. 어찌나 세게 부딪쳤는지 달려오던 자세 그

대로 바닥에 쳐박혔다. 얼굴이 밀가루 반죽마냥 으깨져버렸다. 코와 입주변이 폭탄이라도 맞은 듯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끝이었다. 은정은 경련조차 못한 채 죽어버렸다.

“언...언니..”

은미가 처참한 시체로 변한 은정에게 다가간다.

‘이제 일대 일이다’

CCTV를 힐끔 거린 재성이 마지막 힘을 모았다.

“와우, 퍼펙트하게 들어갔네”

은미가 멍하니 입을 벌린채 재성을 쳐다본다.

“병신같은 년, 재미없게 벌써 죽어버리다니...끝까지 쓸모가 없구만”

“뭐..뭐라구”

“첫경험도 나랑 하더니 마지막 경험도 나랑 하네, 장애인 같은 년. 크크”

“.....”

“왜? 너도 경험시켜줄까?”

은미의 팔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눈에선 마스카라와 뒤섞인 시커먼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너를 알아, 너도 정신질환자지?”

“으으....”

은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빨을 다닥 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너도 나한테 처녀막을 헌납해라, 그러면 일년 정도는 데리고 놀아주마”

은미의 눈이 희끄무레하게 변했다. 시체 옆에 떨어진 식칼을 주워 들고 재성을 노려보았다. 성공이다. 재성

의 계획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다.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다.

“니 애미도 정신병자, 니 할미도 정신병자”

재성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으아아아”

은미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준비하고 있던 재성이 잽싸게 물러섰다.

“우와아아”

마구잡이로 식칼을 휘두르며 재차 재성을 덮쳐갔다.

신발

재성이 눈을 감은 채 반보만 물러섰다.

“서걱”

예상했던 끔찍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가슴부터 배까지 찢어진 옷이 흉하게 나풀거렸다. 뜻밖의 행운이

었다. 재성이 재빨리 소화기를 들자 그녀가 다시 달려들었다.

“퍼어억”

허리힘까지 모조린 동원한 풀스윙이었다. 이것이 야구배트였다면 무조건 홈런이었다. 그녀는 실 끊긴 연처

럼 날아가 아무렇게나 쳐박혔다. 이마부터 광대뼈까지 피떡으로 변했다. 바깥으로 튀어나온 광대뼈는 설탕

가루처럼 잘게 빻아져 있었다.

“이겼다..”

이제 모든 것은 CCTV에 달렸다. 자신은 흉기로 공격당했고, 게다가 지금은 야간이었다. 자신의 정당방위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소화기를 내려놓자 멀리서 일단의 사람들이 들이 닥쳤다.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날카

로운 눈매로 볼 때 형사들이 확실했다.

“정재성...당신을, 컥 이게 뭐야”

달려오던 그들이 처참한 시체를 보자 잠시 멈칫 거린다.

“완전 미쳤구만, 널 살인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일단 경찰서로 가죠, 가서 다 얘기할게요”

재성의 말에 형사들이 서로를 쳐다본다. 그들 중 하나가 재성의 팔을 사정없이 비틀었다.

“으윽, 살살해요”

형사는 묵묵히 수갑을 채우고는 거칠게 팔을 붙잡았다.

순찰차를 타고 재성이 도착한 곳은 은곡 경찰서였다. 3층짜리 건물의 경찰서 입구에는 두 명의 의경이 경례

를 붙이고 있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길게 뻗은 통로가 나타났다. 재성의 양팔은 형사들에 의해 단단힌 붙잡힌 상태였는

데, 그들의 손아귀 힘에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강력계의 푯말이 붙은 사무실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

들이 보였다. 작업복 차림의 남성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총무가 무엇인가를 조사받고 있었

다. 재성이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총무는 재성과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앉아”

재성이 순순히 그들의 말을 따랐다. 최대한 협조적일 필요가 있었다. 책상하나를 사이에 둔 채 머리가 희끗

희끗한 남성 하나가 자신을 바라봤다.

“다 말한다고 했다면서?”

“네, 다 말할게요”

“지금 말한다고 자수가 성립되진 않아, 한발 늦었어”

형사의 말에 재성이 고개를 저었다.

“자수가 아니라 정당방위입니다”

“정당방위?”

“네, CCTV에 다 찍혀 있을 겁니다. 가서 확인해 보세요”

“무슨 소리 하는 거지?”

재성을 연행해 온 형사 중 하나가 그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전달한다.

“그 새 또 죽였어? 이거 완전 악질이구만”

문득 기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재성이 표정을 굳힌 채 형사에게 질문했다.

“제 죄명이 뭐죠?”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벌렸다.

“기억이 안나는 모양인데, 설명해주지. 넌 지금 최부성과 오민아의 유력한 살인 용의자다”

“네? 그게 누군데요?”

재성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잡아떼 봐야 소용없어, 증거들이 너무 확실해”

“정말 몰라서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그들이 누구죠?”

혀를 끌끌 차던 형사가 서류하나를 펼쳐들었다.

“이름은 최부성, 나이는 칠십사세, 이 사람은 너의 옆방에서 살해당했어”

“잠깐만요”

“뭐지?”

“옆방 노인네가 죽었다구요?”

“그래 사망원인은 질식사지만, 목에는 칼이 꽂혀 있었지. 목졸라서 죽인 후에 목에다 칼을 꽂은 거야”

“그럴 리가요...아까까지 저랑 대화했는 걸요”

“너랑 얘기 했다고?”

“네, 분명히 얘기 했어요”

“기가 막히는 구만, 그 사람은 성대부종이야. 성대를 드러내 버려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재성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그..그럼 오민아는 누군가요?”

“오민아, 나이는 이십삼세. 이 여자도 목졸라 죽였구만...”

재성이 직감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죽이고 나서... 강간까지 하고 말야”

“아..아니야”

“아니긴, 목격자가 있는데”

재성의 눈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작업복의 남성이 들어왔다.

“관계는 했는데 죽이지는 않았어요”

“훗”

재성의 말에 형사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자신이 말해 놓고도 어색했다.

“말이 되는 변명을 좀 해봐, 시체 썩은 냄새까지 참아가며 그 짓거리 했잖아, 변태새끼 아니랄까봐 화장품

을 사용했더구만”

“냄새를 못 맡아요..”

재성이 힘없이 대답하자 형사가 노골적으로 비꼬았다.

“어이쿠, 그래서 화장품을 사용하셨어요?”

“물이...물이 안나왔어요”

“당연하지 시체니까”

재성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는 목격자가 있다 쳐도 노인네는 제가 죽였단 걸 어떻게 알죠?”

“그야 쉬운 일이었지, 자네 주민등록증이 떨어져 있었으니까”

둔기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골목길에서 자신을 덮친 누군가가 떠올랐다. 범인은 바로 그 놈이었

다.

“모함이예요”

재성이 고함을 질렀다.

“제가 죽였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누군가 제 신분증을 훔쳐서 모함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아직까진 그렇지, 국과수에 칼을 보냈어. 조만간 지문감식이 끝날 거야”

재성은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찰은 재성을 범인으로 단정내리고 있었다.

"칼뿐만이 아니라 방안에 떨어져 있던 모발도 같이 의뢰했네, 두 종류의 모발이 발견됐거든. 하나는 피해

자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어"

“그리고 자네가 말한 CCTV도 분석중이네, 테잎을 회수해서 검토하고 있으니까 곧 밝혀질테지”

“그건 정말 정당방위예요”

“글세, 두고봐야 알지”

재성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총무에게 시선을 돌렸다. 죽일듯한 기세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봐 총무, 빨리 말해...너희가 먼저 죽이려고 했잖아”

“미...미쳤어? 살인자 주...주제에 뻔뻔하기는”

총무가 더듬거리면서 소리를 지른다. 기가 막혔다. 분위기를 보니 놈은 무조건 잡아 뗄 기색이었다. 멍하니

있던 재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잠깐만요, 노인네가 말을 못한다고 했죠?”

“그래”

재성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은 분명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굵은 성악톤의 목소리를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누군가가 노인을 죽이고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메모 역시 자신

을 유혹하기 위한 미끼였다. 이로써 하나는 확실해졌다. 골목길에서 자신을 덮친 놈이 방에 숨어있던 바로

그 놈이었다. 그리고 놈이 이번 사건의 진범이었다. 재성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흥분하면 꼼짝

없이 뒤집어 쓸 판이었던 것이다. 재성이 침묵을 지키자 형사들도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

다. 재성이 추리를 해나가는 동안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에 비행기 타니까 피곤하시겠어요”

별안간 복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굵직한 성악풍의 목소리는 통로를 넘어 사무실 안까지 생생하게 들려왔

다.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들렸지만 재성의 귀엔 굵은 목소리만이 벼락처럼 꽂혔다. 구둣발 소리와 함

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드디어 왔구만”

맞은편의 형사가 길게 기지개를 편다. 별안간 재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저..저놈이예요”

재성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사무실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저 목소리예요, 저 놈이 노인네 방에서 나한테 말했다구요”

형사가 진의를 확인하려는 듯 재성을 주시한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재성이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성에게서 진심이 느껴진 모양이다.

“네. 정말 끔찍한 사건입니다”

굵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자 재성과 형사의 눈이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철컥”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육중한 몸매의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삭발하다시피 한 머리에 얼굴

전체에 자잘한 흉터가 가득하다.

“저 놈입니다, 저놈이 진범이라구요”

재성의 눈에서 확신에 찬 음성이 쏟아졌다. 남성의 뒤를 이어 익숙한 얼굴 하나가 따라 들어왔다. 한순경이

었다. 재성은 든든한 원군이 도착하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한순경이 재성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재

성도 따라 웃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 자식이 확실합니다. 골목길에서 나를 깠던 놈도 이놈이고, 노인네 방에 숨어있던 놈도 바로 이놈입니

다, 이 놈이 두 사람 다 죽였다구요”

재성의 맞은편에 있던 형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지문과 모발감식 결과가 나오면 다들 알게 될겁니다”

재성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제 한순경의 증언만 뒷받침되면 자신의 결백이 밝혀질 터였다. 모

두의 시선이 거구의 사내에게 집중됐다. 사내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내가 누굴 죽였다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독히도 탁한 목소리가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재성의 무릎이 풀썩 꺽

였다.

"....”

맞은편에 서있던 형사가 재성에게 말했다.

“자네가 진범으로 지목한 김형사는 네 시간 전에 입국한 사람일세...”

“마...말도 안돼...”

“마약범죄 관련 협약 때문에 스위스에 다녀오는 길이지...”

재성이 힘없이 주저 앉았다. 흐리멍덩한 눈이 한순경을 향했다.

“여기 CCTV 테잎입니다”

굵직한 음성이 한순경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재성의 입가로 가느다란 경련이 일었다. 옆을 보자 총무와 작

업복 남성 모두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분석해 보니까 정당방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총 다섯 번에 걸쳐 그는 CCTV쪽을 쳐다봤고, 일

부러 흉기에 찔린 듯한 정황들이 곳곳에 포착됐습니다.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그는 도망가지 않았던 거죠”

“그러면?”

형사의 질문에 한순경이 말을 이었다.

“자세한건 전문가의 감정을 받아봐야 합니다만, 제 견해는 이렇습니다. 저자는 도발을 한 뒤에 여자들을

죽였습니다. 정당방위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다쳤구요”

재성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꿈속을 거니는 듯 희뿌연 안개가 가득찼다. 재성이 힘없이 중얼거

렸다.

“진급 때문이예요”

“진급?”

형사 하나가 용케 알아 듣고 반문했다.

“5년째 순경이어서 진급하려고..”

말의 끝부분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진급 하려고 사람을 죽였다?”

형사들이 제각각 비웃음을 터트렸다.

“한경장은 두달 전에 진급했어, 아마 동기들 중에 세 번째로 빠르다지?”

모두가 껄껄 웃었다.

맞은편의 형사가 미소를 머금은 채 재성에게 말했다.

“지문감식만 나오면 끝나”

재성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할 필요없어..그거 내 지문이야..”

과일 쟁반을 내밀던 한순경이 떠올랐다.

“이제 실토하는군, 머리카락도 자네 것이 맞지?"

"그래 아마도..."

머리속에서 장면들이 펼쳐졌다. 한순경이 내밀었던 줄넘기...말을 듣지 않던 MP3의 볼륨 버튼...그리고 한

순경이 자신이 떨어뜨린 열쇠로 방문을 여는것과 여기저기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을 줍는 장면들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갔다 .







형사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재성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최대한 몸을 웅크

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죽은 듯이 있던 재성의 눈이 슬며시 떠졌다. 웅크렸던 몸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

흐리멍덩하던 눈동자에 파문이 일어났다. 파문은 점차 확산되어 동공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침내 눈에 생

기가 돌아왔고,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재성의 머릿속에 수십개의 폭죽이 터졌다.




방금 기가 막힌 시나리오 하나가 떠올랐다.

 

 

아 진짜 끝은 뭔가 약간 부족한 느낌이...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43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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