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펌] 손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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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안내

[공포소설][펌] 손 (6편)

8 갱킹 0 2,861 2020.04.13 16:26
“왜 갑자기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면서 웃고 그러냐. 뭐 좋은 일 있어?”



일을 마치고 모처럼 일찍 귀가를 했는데, 마중 나온 아내가 연신 싱글벙글이다.



“후후후 오늘 무슨 일 있었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온다며,

어제 밤에 단단히 삐져서는 오늘 아침부터 한 마디도 안 한 아내였다.

심지어 아침밥과 국을 냉장고에 넣어 놓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아마 며칠은 고생하겠거니 했던 터인데.



“나 오늘 병원 갔다 왔어.”



“어? 어디 아프...”



무의식적으로 아내의 건강을 염려하려는데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다.



“너, 너 혹시 임신?”



말을 마치자 아내가 달려들어 내 목을 껴안는다.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전신을 휘감는다.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 오늘 갑자기 속이 이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 본 건데...히히”



지금 아내의 모습에서 아침까지의 살벌함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된다는 것.

어떤 기분인지 정말 궁금했었는데,

뭐랄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낯설기도 한 이 기분.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내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자기야 아침엔 미안했어~ 사랑해~”



모처럼 일찍 퇴근했더니 이런 행복이 찾아오는구나.

다시는 술 때문에 늦게 퇴근하지 말아야지.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오늘 밤에 우리 연애할 때 분위기 좀 내볼까?”



“어서 들어오기나 하셔. 참, 자기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 놨어~”



행복하다.

아니 행복했다.

비록 일주일 만에 약속을 어겼지만.

그래도... ...












윤철의 배에서 나온 ‘손’이 발밑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내 발목을 잡기 위해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아까 조장에게 했던 것처럼.

좌우로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배 속으로 시뻘건 내장들이 보여 무척이나 역겨웠다.

대체 저 내장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손이 나온 걸까?



-탁 타닥 탁 타닥



나는 천천히 염산 통을 ‘손’ 바로 위까지 올렸다.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신중해야했다.



-촤아아



적당한 타이밍을 잡았다고 판단,

염산을 부었다.

하지만 ‘손’은 엄지 부위만 타격을 입었을 뿐,

빠른 움직임으로 피해를 최소화 했다.

들이부운 양에 비해 터무니없는 성과였다.

나는 다시 진지한 자세로 ‘손’에 염산을 붓기 위해 몰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나의 공격에도,

‘손’은 약간의 피해만 입은 채 잘도 피해버린다.

염산의 양은 점점 줄어가고,

‘손’은 여전히 좌우로 움직이며 나의 행동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손’과 이렇게 대치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호영의 바지춤에서 라이터만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염산 통을 흔들어보니 많아 봐야 세 번 정도 공격할 양 뿐이었다.



-촤아아!



나는 염산 통을 비스듬히 들고 염산이 앞으로 뻗어나가게끔 뿌렸다.

피해는 적지만,

반경을 넓혀 피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예상대로, ‘손’은 방금 전 보다 큰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염산에 맞은 부분에서 ‘치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손'의 딜레이가 생긴 이 때가 기회였다.

나는 재 빨리 호영에게로 다가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의 감촉이 전해져온다.

자 이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

바로 그 때,



-콰악!



변기에 있던 ‘손’이,

호영의 바지 주머니에서 막 빼내던 나의 왼 손목을 잡았다.

거리가 안 닿을 줄 알았는데 어깻죽지까지 튀어나와서는 기어코 나를 붙잡은 것이다.

예상하지 못 한 습격이라 깜짝 놀라서 그런지,

가슴이 벌렁 벌렁 뛰기 시작했다.



-꽈아아악



엄청난 힘이 손목에 전해져 온다.



“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비명.

머리를 붙잡힌 것과는 또 다른 아픔이 내 몸에 엄습한다.

‘손’은 호영의 주머니에서 내 왼손을 빼내,

조금씩 변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손에 쥔 라이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쏟아 부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듯 아파온다.

이 무시무시한 힘에는 그 어떤 물리적 저항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격통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나는 오른손에 쥔 염산 통을 ‘손’에 겨누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아



정확히 ‘손’의 손목 부분에 염산을 붓는데 성공했다.



“크으으으윽!!”



잡혀있는 내 왼손에도 염산이 튀면서 강한 고통을 유발했다.

염산이 닿은 자리가 기포를 내며 녹아내린다.

살이 녹아내리는 아픔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손이 통째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약간 튄 정도로 이런데 조장은 오죽했을까.



-부르르르 부르르르



‘손’ 또한 큰 데미지로 인해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하지만 부여잡은 손은 여전히 놓지 않고 있었다.

악력이 아까보단 약해졌지만 여전히 빠져 나가긴 힘들었다.

염산은 이제 한 번 정도 뿌릴 양밖에 안 남았다.

내 마지막 보루.

그러나 ‘손’이 내 손을 다시 당기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촤아아아아



한 번 더 아까와 같은 부위에 염산을 붓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손’은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부르르 떨더니,

급기야 손목에서 풀어지고 말았다.

나는 재빨리 손을 빼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의 손목 부위가 녹아 내려 뼈를 드러내고 있었고,

나 역시 염산의 영향으로 왼 손 군데군데의 살갗이 벗겨지고 녹아내렸다.

뼈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각이 거의 없어,

일정시간동안 사용하는데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에 쥔 라이터만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이제 문 쪽으로 가는 네 걸음만 남았다.

그런데,

배에서 나온 ‘손’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내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젠 염산도 없었다.

어떻게 저 ‘손’을 피해 앞으로 갈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보니 뛰어 넘으면 될 것 같았다.

그래봐야 팔꿈치 정도 길이니까.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 자리에서 박차 올랐다.

적어도 ‘손’이 나를 붙잡을 수 없을 만큼.



-콰아악!



“으악?”



-콰당!



‘손’보다 높이 뛰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손’이 팔뚝 정도의 길이를 유지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손'은 숨어 있던 팔뚝을 드러내 내게로 뻗어왔고,

뛰는 도중 발목을 잡힌 나는 심하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손’이 나를 조금씩 뒤로 당기기 시작한다.

이제 방법이 없다.

아내라도, 아내라도 살려야한다.



“주희야! 김주희! 주희야!!!”



아내는 여전히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물론 내가 ‘손’에게 잡혀 있는 것도 보지 못 하고 있다.



“주희야! 잠깐만, 잠깐만 나를 좀 봐 어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자 아내가 힘겹게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창백한 얼굴이었다.



“어...자...자기. 꺄아아악! 자기야!!!”



아내가 내 모습을 발견하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주희야! 이거 받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라이터를 아내에게로 던졌다.



“문 밑에 베이비오일 보이지! 문에다 몽땅 뿌리고 불을 붙여!”



“그러면 자기는!! 자기는 어떡하고!!!”



‘손’이 점점 나를 변기 쪽으로 끌고 간다.

내 힘으로 이를 저지하긴 불가항력이었다.

나는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아내에게 외쳤다.



“너라도 여길 나가! 넌 홀몸이 아니잖아. 어서 해! 조금만 더 있으면.. 끄아아악!!”



바닥으로 부었던 염산이 내 몸에 닿았다.

마치 고열로 담근 쇳덩이가 살점에 닿는 느낌이다.



“끄으윽... 어, 어서 불을 붙여! 어서!!”



아내는 손으로 입을 감싸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만 짓고 있다.



“어떡해, 어떡해!! 저기요, 저기요!! 좀 도와주세요 네!?”



아내가 정신을 잃은 조장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장의 녹아내린 다리를 보고 깜짝 놀라 손을 뗀다.



“으....어... 무, 무슨 일이요? 라, 라이터는, 라이터는 구했소?”



조장이 정신을 찾았다.

몹시 괴로운 표정이었지만 그나마 아까 보다는 안정 된 듯 했다.

아내는 조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내가 던진 라이터를 줍는다.



“여, 여기요. 라이터 여기요!”



“뭐, 뭘 하고 있소. 그럼 어서 문에 불을 붙여야지!”



“그, 그렇지만 지금 제 남편이 붙잡혔다고요! 어떻게 좀 해 줘요!”



지금 조장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새 변기 앞까지 끌려왔고,

‘손’은 나의 다리를 위로 쭉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악!



변기에 있던 ‘손’이 나의 나머지 발을 붙잡는다.

나는 양쪽 발을 모두 ‘손 들’에게 붙잡힌 상태로,

하체만 붕 띄워진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조금씩 다리가 양 옆으로 벌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대로 날 찢어 죽이려는 것일까?



“저길, 저길 봐요! ‘손’들이 남편 가랑이를 찢으려고 하잖아요!! 이봐요!”



아내의 간곡한 외침이 들려왔다.



“후우..후우.. 당신이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니요. 시간이 없소. 어서, 어서 불을 붙여요!”



아내라도,

아내라도 살아야한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










“나 이제부터 진짜 술 안 먹을거야. 맨날 맨날 일찍 들어올게. 히히.”

“이그,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니?”

“어? 가암히 서방 말을 못 믿어?”

“하하하. 개가 똥을 참지, 자기가 술을 어떻게 참니.”

“정말이야! 두고보라고. 멋진 아빠가 될 테니깐.”
 
......


두고보라고.

멋진 아빠가 될 테니깐.



-따르르르르르릉!



시끄러운 알람소리.



“으...아... 뭐야 벌써 여덟시야?”



자도, 자도 자고 싶은 게 잠이다.

그런데 아주 기가 막힌 꿈을 꾼 것 같은데 뭐였더라.



“자기야 일어났어? 아침 차렸으니까 어서 나와~”



방 바깥으로 아내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침대 난간에 멍 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뭔가 끔찍한 일을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 꿈이 떠오르질 않는다.

평소 같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잊어버릴 텐데 이상하게 집착이 생겼다.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겨봤지만,

'화장실'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야!! 밥 먹으라고 밥!!”



아내의 소리가 거칠어졌다.

결국 나는 찝찝한 마음을 지우지 못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머릿속에는 화장실만 떠올랐다.



“저, 자기야. 혹시 우리 화장실에 무슨 일 있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화장실? 무슨?”



“그러니까, 뭐 변기가 막혔다거나, 뭐 구더기가 번식한다거나 같은...”



막 입안에 음식을 넣고 있던 아내가 인상을 확 구기기 시작했다.



“아~ 밥 먹는데 왜 그딴 얘기를 하니!!”



“아니, 그게 아니고 꿈이 조금 이상해서...”



아내의 대답에 머쓱해진 나는,

이후로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용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막 문손잡이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번쩍하고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손!”



나도 모르게 내 뱉는 탄식.



“뭐? 갑자기 문 앞에서 무슨 소리야.”



그릇을 치우던 아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손! 손 말이야! 변기에 손이 있었잖아!”



“꿈 꿨다는 게 그거야? 애도 아니고 뭐 그런 꿈을 꾸냐. 어서 씻기나해 늦겠어!”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는 아내.

하지만 난 모든 게 떠올랐다.

변기에서 나와 사람을 죽이던 ‘손’.

그리고 죽은 사람의 몸에서는 또 다른 ‘손’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손’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를 맞이했었다.

갑자기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억.

그게 꿈이었단 말인가?



“자기야. 오늘 며칠이지?”



“24일~”



“뭐? 오늘 24일이라고? 어제 2일이었잖아. 9월 2일.”



“빨리 세수하고 잠 깨세요 아저씨~”



뭔가 이상했다.

어제는 9월 2일이었는데.

어제 밤에, 과장님 그리고 동료 몇 명이랑 9월이 된 기념을 하자며 술을 마시러 갔었다.

분명했다.

얼큰하게 취한 과장님이,

옷을 벗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경찰까지 왔던 것이 똑똑히 기억나니까.

여러모로 이상했지만 일단 모든 게 꿈이라 결론 짓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변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혹시라도 ‘손’이 있을까봐.

하지만,

역시 없었다.

나는 '참 정교한 꿈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변기로 다가갔다.

소변을 보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는데,

변기 안에 있는 물에서 뭔가 이상한 게 비친다.



“헉! 이게 뭐야!”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왠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천장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변기를 바라보자 방금 그 여자의 얼굴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별 헛 게 다 보인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용변과 세면을 마쳤다.



“이그 회사 늦겠다. 오늘 따라 왜 그렇게 꾸물대니.”



화장실에서 나오자,

어느새 아내가 옷가지를 준비해 놓고, 넥타이 줄 길이를 조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어서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

머리를 빗는 둥 마는 둥 손질하고 급하게 옷을 입는다.



“다녀와. 일찍 온다고 약속한 거 얼마나 오래 지키는지 보겠어!”



그 약속이 깨진지가 언젠데.

역시 뭔가가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천천히 생각할 여유는 없다.

일단 지각은 면해야한다.



“그래 알았어. 다녀올게 이따 봐~”



평범한 검정색 서류가방을 손에 쥐고 빠른 걸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양이 나를 비춘다.



“여~ 오늘은 조금 늦은 모양이네요~”



매일 아침 복도에서 체조를 하는 903호 아저씨도 그대로였다.

평범한 일상의 시작과 진행.

역시 모든 건 다 꿈이었나.

엘리베이터를 내려 경비실을 지나치려는 순간,

갑자기 아까 전 꿈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비실 문을 두드려 보았다.



“아저씨, 아저씨!!”



옆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십니... 아 901호. 안녕하세요.”



꿈에서 처참하게 죽었던 그 경비였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직 교대 안 하셨네요? 피곤하시겠어요.”



“이놈의 늙은이가 정신이 나간게지. 지금이 몇 신데 안 오고. 휴~”



한 숨을 쉬니 깊게 패인 주름이 더욱 도드라진 느낌이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 곳에서 나와 아파트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늘 가던 길로 걸음을 떼려는 데,

문득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후미진 길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왠지 그 길로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지하철역까지 거리는 비슷했다.

잠시 손을 올려 시계를 한 번 확인한 후,

나는 그 길로 걷기 시작했다.

짓다 만 건물들,

여기저기 방치 된 쓰레기들,

같은 아파트 앞인데 늘 다니던 길과 전연 딴 판이었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맨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보니 뚜껑이 열려있었다.



-살......세요



맨홀 앞에 서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엎드리고 맨홀에 귀를 기울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만약 내가 이 길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 여자는 오랫동안 구출 받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와줄게요!”



아래로 소리를 지른 다음,

맨홀에 붙어있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하수구의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

사다리 밑으로 내려간 나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그런지 그 여자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용 플레시를 켰다.

그리고 좌우로 빛을 비추며 살피고 있는데,



“도와주세요.”



“으악!"



갑자기 내 귀 바로 옆으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아. 깜짝 놀랐잖아요. 저기 괜찮으세요?”



떨어진 핸드폰을 집으며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도와주세요.”



아까와 같은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예. 도와주러 왔어요. 어쩌다 이런 길로 들어오셔서 봉변을 당하시고.”



어둠에 가려 여자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다.

긴 생머리에 짙은 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쓰러져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설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맨홀에서 떨어진 거.. 아닌가요? 서 계실 수 있으시네요..?”



“도와주세요.”



또 같은 말이었다.

나는 왠지 이 여자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 저기 죄송한데요. 그.. 그.. 일단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지 제가 좀 보겠습니다.”



나는 다시 핸드폰의 플레시를 켜고 이번엔 그 여자 쪽을 비춰보았다.



-파앗



“우아아악!”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양팔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와주세요.”



검정색 민소매 원피스의 어깨끈 옆으로,

당연히 있어야할 그녀의 팔이 없었다.

거기에 그녀의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잘려진 팔 부위에서 피가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으... 으어어어... 당...신 뭐야!!”



그 여자가 비틀비틀 조금씩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는 뒤로 엎어져 땅에 손을 짚은 채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첨벙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자 손에 물이 닿는 느낌이 난다.

화들짝 뒤를 돌아보니 하수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못 한 채,

이빨만 딱딱 소리를 내며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이윽고 그 여자는 내 바로 앞까지 도달했고,

허리를 숙여 내 면전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댄다.



“도와주세요.”



또 똑같은 말.

숨 막히는 공포가 나를 사로잡기 시작한다.



“대... 대체 뭘 도와 달라는 거야!”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질렀다.



“저. ‘손’을 잃어버렸어요.”



-촤아아아아아



갑작스런 물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하수구에서 치솟은 ‘손’이 내 얼굴을 덮치고 있었다.



-콰악!



‘손’이 내 얼굴을 붙잡고 터뜨릴 듯 쥐어짜려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찾았네. 내 손.”











.......


“으아아아아아악!!!!!”



그렇게 깨어난 곳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었다.
[이 게시물은 위벨님에 의해 2021-06-08 16:02:43 커뮤니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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